떠나거나 머물거나 ‘집’은 단순한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집에는 사람이 살고, 사람은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시간이 길수록 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은 재개발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영화는 2013년 5월 첫 출간 돼 독립출판계의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온 비정기 간행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 이인규는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철거 이전까지의 모습을 기록해두기로 결심한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이곳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정보와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기록물을 책에 한정짓지 않고 영상으로 확장하여, 다큐멘터리 감독 라야와 둔촌주공아파트의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를 수락한 주민들은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자연에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와 주민들의 집을 조용히 따라간다. 정든 집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집과 하나가 되어 큰 파장을 남긴다.

“추억이 아주 많죠. 같은 집에서 계속 살았으니까. 저 문을 볼 때마다, 내가 도대체 저 문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을까…. 계단 오르내릴 때도 그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도대체 여기를 얼마나 많이 오르락내리락했을까….”

“평생에 다시 한번 이런 데서 못 산다는 생각? 어쨌든 개발이 되면 이 모습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둔촌주공아파트는 건축 당시 자연경관을 살리면서 아파트를 세운다는 서울시의 시범사업으로 세워졌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영화는 세월의 흔적이 선연한 낡은 집에 대해 각기 다른 감정을 고백하는 이들을 통해서 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여지를 준다.

완성도 높은 사진집을 펼쳐보는 듯한 영상과 탄탄한 구성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이탈리아솔로영화제 공식 초청으로 이어졌다.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재개발 이후에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곳에는 다시 사람이 살고 시간은 또 흘러갈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듯, 둔촌주공아파트는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10월 25일 개봉.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