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봄의씨앗 | 248쪽 | 값 13,800원 | 시공사

골목대장이라도 되는지 콧잔등엔 늘 새까만 때가 잔뜩 묻어 있었고, 눈곱도 덕지덕지. 노란빛이 감도는 회색 손은 살이 마모되어 손톱이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마디로 못생긴 고양이였다. 그럼에도 내게 살갑게 굴던 그 고양이가 하루 종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퇴근 후 간식을 사들고 다시 찾아갔지만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고양이와 약속을 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일방적으로 한 약속이면서. 아쉬운 마음에 얼마간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끼 고양이가 걸어 나왔다. _본문 중에서

길고양이의 수명은 3년에서 5년이다. 집고양이 수명의 3분의 1에 불과한 시간. 그 시간 동안 도심 속 대부분 길고양이는 사람이 먹다 버린 음식으로 연명한다. 로드킬이나 학대의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양순’이도 그런 길고양이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쓰레기 더미에서 우연히 양순이를 만난 저자는 분홍색 젤리 같은 발도, 윤기 흐르는 털도 없었던 이 못생긴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름을 지어주며 조금씩 묘연(猫煙)을 쌓아가던 작가에게 ‘양처럼 순한 고양이’, 양순이는 어느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봄의씨앗’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2017년 여름, 그라폴리오 ‘출판 서바이벌 프로젝트’에 반려묘 양순이와의 이야기를 그린 ‘양순’으로 최종 당선됐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에세이의 인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출간된 <우리 집 길냥이 양순>은 길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이 빼어난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집고양이가 됐지만, 길에서의 습관이 남아있는 양순이와 처음으로 집사가 된 작가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도 재미를 더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만화는 집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로 코끝이 찡해지게 만든다. 그라폴리오에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작가는 “길고양이를 거두어 주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양순이에게서 위안을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냥줍’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길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려동물은 가족이 되는 순간부터 10년 이상을 돌보아야 하는 생명체다. 작가의 솔직담백하고도 눈물겨운 이야기는, 단지 예쁘다거나 불쌍하다는 감정만으로 시작하기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냥줍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저자 소개_ 봄의씨앗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좇아, 직장을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택했다. 좀처럼 동물과 인연이 없었으나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양순과 가족이 되었다. 인생이란 이다지도 알 수 없는 것. 초보 집사이자 초보 작가로 사는 현실이 버겁기도 하지만, 언젠가 진심의 씨앗이 싹을 틔울 거라 믿는다.

그라폴리오 http://www.grafolio.com/story/18843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mbom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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