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치과의원 권혁용 원장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가진 것을 나눌 때 돌아오는 행복은 두 배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실천하고 나면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2003년, 오산에서 봉사단체 ‘나누며사는오산사람들’을 만든 권혁용 원장(열린치과의원)의 말이다. “나눔은 우리 삶의 새벽길이다”라는 글귀도 일상에서 제일 먼저 나눔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생각해냈다. 치과의사가 된 후부터 이십 년이 넘게 새벽길을 밝히고 있는 그에게서 진정한 나눔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 필리핀 의료봉사 현장에서 권혁용 원장(왼쪽)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7년 치과의사 시험에 합격하고서 저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내 삶의 여정은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월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서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98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을 뜻있게 보내고 싶어 아내와 의논해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한 일은 버림받은 신생아들을 목욕시키고, 우유를 먹이고, 돌봐주는 노력봉사였습니다. 꽃동네에서의 3박 4일은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꽃동네를 다녀온 후 가훈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정했습니다. 욕심 없이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누며사는오산사람들’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9년, 오산에 치과 개원을 하면서 오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곳 지역사회 단체에서 시행하는 봉사활동에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봉사단체가 없더군요.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우리 아이들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에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봉사단체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나눔단체인 ‘아름다운재단’ 형태의 봉사단체가 됐으면 했는데, 그게 바로 ‘나누며사는오산사람들’(이하 나.사.오.사)입니다. 포털사이트에 무작정 나.사.오.사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2개월이 지나니 가입회원이 20명 정도가 모이게 되었고, 첫 오프 모임을 했습니다. 그렇게 매월 준비모임을 하면서 봉사단체의 성격, 운영방안, 조직구성 등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고 2004년 4월, 창립총회 때 초대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 나.사.오.사 연탄나눔운동

△ 연탄 나눔운동 현장에서 권 원장의 모습

△ 장학금 전달식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7명 정도에 불과했던 회원 수는 10년 만에 7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매월 후원금을 내는 회원은 280여 명이다. 매년 5천만 원 이상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복지시설에 후원하고 있다. 나.사.오.사는 창립된 지 15년 만에 오산의 대표적인 봉사단체로 인정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권 원장은 2013년부터 가족과 함께 해외 의료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구성된 의료인들이 모여 만든 의료봉사 단체 ‘오산루카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과 새터민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의료봉사는 필리핀까지 확장됐다. 권 원장은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는 매년 마닐라 외곽 말라본 시의 무료 진료소 ‘Joseph Clinic’(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운영)을 방문하여 수많은 현지인을 치료하고 돌아온다. 처음 2년 동안은 이동식 진료 장비가 없어서 발치 위주의 진료를 많이 했지만,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동식 진료장비를 구입했다. 이후부터는 ▲칫솔질교육 ▲스케일링 ▲잇몸치료 ▲발치 ▲레진치료 ▲치수복조 등 보철진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치료를 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봉사를 마치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봉사자의 참된 면모가 드러났다.

△ 필리핀 의료봉사에는 권 원장의 자녀들도 함께 진료를 도왔다.

△ (왼쪽 세 번째) 차녀 권소담 양은 2017년,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소아암 환자에게 모발을 기증했다.

△ 권 원장이 아이들에게 직접 칫솔질 교육을 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인들의 구강 상태는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무척 열악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치과에서 진료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 하루 일당이 500페소 정도인데, 치과에서 치아 하나 뽑는 비용이 500페소라고 합니다. 뽑지 않고 여러 번 치료를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치료하여 쓸 수 있는 치아도 무조건 뽑아달라고 합니다. 20대들도 전치부나 구치부에 치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 추석에 만난 15살 남학생도 상악 전치부 4개 치아 모두가 신경부위까지 썩은 충치 환자였습니다. 무작정 치아를 빼달라고 하는데, 설득해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하루에 치료를 마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마취를 하고 pulpotomy로 치료를 한 다음 레진으로 바로 충전해 주었습니다. 거울을 손에 들게 하고 치료를 마친 본인의 치아를 보여주니, 활짝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군요. 함께 온 엄마가 고맙다며 제 손을 꼭 잡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 자신이 치료한 환자와 함께

가족들은 현지에서 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합니까?

아내는 약사라 약제팀에서 처방전의 약을 조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은 교대로 아내와 저를 도와줍니다. 환자들도 많고 진료환경이 좋지 않아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때문에 봉사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는 자기들도 치과의사나 약사가 되어 해외봉사를 다닌다고 하더니, 공부로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그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웃음) 봉사할 때마다 “아빠 엄마처럼 나눔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 필리핀 의료봉사 현장에서 권 원장과 가족들.

의료봉사 외에도 연탄나눔, 후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힘쓰고 계신데, 병원 진료를 하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사.오.사가 창립되고 10년간 대표를 맡으면서 무척 재미있게 활동했습니다. 처음 대표를 시작할 때는 매월 빈자 가정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매월 1회 회원 가족들과 함께 하는 복지시설 자원봉사활동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장학금 지원사업 ▲나눔잇기 문화제 ▲연탄 나눔활동 ▲나눔가게 운영 ▲학교급식비 지원 ▲따뜻한오산만들기 후원의 밤 ▲교복 지원 ▲기부릴레이 활동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하는 나눔축제 ▲새내기 입학금지원 ▲복지단체 행사지원 ▲소식지 발행으로 사업 내용이 다양해졌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회원들에게 제안하고 논의하면서 사업이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사.오.사’ 를 오산의 아름다운재단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산 시민들에게 인정을 받기까지 많은 오해도 있었습니다. “정치를 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었지요. 10년 이상 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은 그런 소문들이 물거품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이하 건치)에서 주관하는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인 ‘와락진료소’에 참여했습니다. 건치 회원이면서도 그동안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올해부터 합류했습니다. 비록 2회 참여했지만, 그곳에서 서로를 향한 배려의 마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불평등의 문제를 고민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회적 연대 정신을 다시금 배우게 되었습니다. 올해 6월에는 노사합의로 해직자 전원이 복직되어 와락진료소 활동도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늦게 합류한 만큼 남은 동안 열심히 참여하려고 합니다.

△ 와락진료소에서

의료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데,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료봉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이 생기면 모이게 됩니다.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공간에 모인 구성원들의 활발한 논의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Joseph Clinic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한국 의료봉사단체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경기도치과의사회에서도 필리핀 해외 의료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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