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애인 치과 진료의 ‘얼굴’ 이긍호 교수(더스마일치과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소아치과 명예교수)

1994년에 국내 치과대학에 최초로 장애인치과학을 도입하고, 2004년에 대한장애인치과학회를 설립한 이긍호 교수는 대한민국 장애인 진료의 선구자나 마찬가지다. 중증 장애인 전신마취를 처음 시작했으며, 몇몇 뜻있는 사람들과 2003년에 국내 최초로 장애인 구강건강 증진을 위한 단체인 ‘스마일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다. 2014년에는 스마일재단과 개인ㆍ단체의 후원으로 장애인치과센터 ‘더스마일치과의원’을 세우고, 현재까지 수많은 장애인의 구강건강을 위해 힘쓰고 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장애인 진료를 계속하고 싶다”는 이긍호 교수를 만났다.

△ 이긍호 교수

장애인 진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소아치과 교수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뇌성마비 아이가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체어에 앉히기조차 힘든 거다. 나름대로 아이들을 다루는 데 자신 있다는 건방진 생각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 일 이후에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매주 한 번씩 진료봉사를 시작했다. 여러 장애인을 만나면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진료를 하려면 장애인에 대한 공부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86년에 장애인치과학으로 정평이 난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일본의 장애인 치과진료 환경은 어땠습니까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장애인치과학이 학과목에 포함돼있었으며, 학회가 설립됐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장애인치과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대학마다 장애인치과진료센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 내에 장애인시설에서 대부분 치과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애인치과학을 배우겠다고 간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교수들이 도와주었다. 특히 장애인치과학회에 소속된 교수들은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치과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대학 내에 학과목으로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고, 학회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귀국 후 1994년에 경희치대에 장애인치과학을 학과목으로 포함시키는 데 모든 교수의 동의를 얻었고, 4학년 본과 수업이 이루어지는 1998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인맥은 대한장애인치과학회를 설립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현재도 양 학회는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 진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행동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행동조절이 되려면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아픈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로 아픈지, 왜 아픈지를 설명해주고 참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말하고(Tell) 보여주고(Show) 행동으로 옮기는 것(Do), TSD를 반드시 거친 후에 이것이 안 되면 묶어놓고 진료하는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거나 안정제를 투여한다. 전신마취는 물리적인 방법마저도 통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인 거다. 장애인 100명 중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환자는 5~10%에 불과하다. 전신마취를 최소한으로 하면 힘이 들 수밖에 없지만, 편하게 진료하려고 전신마취를 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자폐 환자의 경우에는 병원에 들어오는 데까지 하루, 의자에 앉는 데까지 하루, 파노라마 촬영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 지적 장애인은 가족도 다루기가 힘들어서 치료하는 데 매우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치료를 마치는 데 일 년이 꼬박 걸린 환자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힘들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전부 치료해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장애인 진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치료 후에 관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적 장애인은 이를 닦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 장애인은 스스로 이를 닦지 못한다. 또 장애인들 대부분은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보호자가 돈을 벌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구강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기치료와 예방은 장애인치과학이 가야 할 길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장애인들에게 조기치료와 예방을 강조하는 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정부에서 장애인 치과 진료의 제도 마련도 이에 초점을 맞춘다면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진료가 보편화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장애인 진료를 하려는 치과의사가 더 많아야 하고, 장애인 진료에 적합한 장소도 더 늘어나야 한다. 장애인이 치과에 접근하기 쉬운 환경은 국가에서 마련해주어야 한다. 장애인 진료를 하려면 동정심만 가지고는 오래 하기 어렵다. 돈벌이도 되지 않을뿐더러 비장애인에 비해 힘이 몇 배로 들기 때문이다. 장애에 대한 지식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치과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장애인 진료를 하려면 국가의 지원도 꼭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고 싶어서 치과의사를 택한 이들이 선뜻 장애인 진료를 하겠다고 나서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도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있어, 곳곳에서 진료 봉사활동이 이루어지는 점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스마일치과의원에도 진료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진료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80년 가까이 살다보니 “오래 사셔서 우리 아이 치료를 계속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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