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그를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소년이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졌다는 사실도 아버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소년의 유일한 돌파구는 음악뿐이었다.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에 장학생으로 다닐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클래식보다 로큰롤에 심취했다. 밴드 활동을 거쳐 솔로로 데뷔할 수 있게 됐을 때, 그는 ‘레지널드 드와이트’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무대에 선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3억 5천만 장 음반 판매 기록하며 팝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 엘튼 존 이야기다.

영화 <로켓맨>은 엘튼 존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음에도, 그는 한때 마약과 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영화는 엘튼 존이 재활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가운데, 뮤지컬 화법을 빌려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의 고뇌를 보여준다. 자살 시도, 동성애, 약물 흡입 등 적나라하기까지 한 장면들은 엘튼 존이 직접 제작에 참여해 세세한 부분까지 조언한 덕분이다. “팬들이 내가 70~80년대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 알고 있는데, 미화할 이유가 없다”는 뜻에서다.

「Your Song」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Rocket Ma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등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그의 음악들은 단연 압도적이다. 특히 그가 20여 분 만에 작곡한 「Your Song」이 탄생하는 순간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빛나는 장면이다. 그의 노래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진솔한 가사 때문이기도 한데, 엘튼 존은 50년이 넘는 음악인생에서 작사가 버니 토핀과 늘 함께였다. 엘튼 존에게 버니 토핀은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로, 그는 엘튼 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녹여내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에서도 이를 놓치지 않고 이들의 협업을 잘 묘사했다.

튀다 못해 전위적이기까지 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던 엘튼 존의 공연 장면들은, 어린 시절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서히 망가지는 무대 뒤 모습과 대비되며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때문에 공연 장면을 제외하고는 뮤지컬 화법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니 캐쉬의 일대기를 다룬 <앙코르>처럼 드라마 장르를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촬영 현장에서 감독 덱스터 플레처(왼쪽)와 태런 에저튼(오른쪽)

그럼에도 태런 에저튼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가 영화를 살린다. 그는 5개월간 피아노와 보컬 레슨을 받은 것은 물론, 엘튼 존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때문에 몇몇 장면에서는 실제 엘튼 존의 모습이 보일 정도다. 엘튼 존은 “태런 에저튼 만큼 완벽하게 나의 곡을 소화하는 배우는 없다”라고 극찬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가 진정한 ‘배우’로 거듭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작사가 버니 역을 맡은 제이미 벨 또한 씬스틸러나 다름없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엘튼 존은, 그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술과 마약에서 벗어난다. 재활원을 나온 후 그가 발표한 앨범들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래미와 아카데미 등 각종 음악상을 휩쓸었다. 영화 말미를 장식하는 「I'm Still Standing」은 그야말로 다시 일어나 대중 앞에 선 팝의 ‘역사’다.

6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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