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집은 이제 곧 허리케인이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는 그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는 보스의 함정에 빠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 현장에 있던 한 소녀를 데리고 도망친다.

영화 <갤버스턴>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미국 텍사스 주 해안도시 갤버스턴(Galveston)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범죄에 연루된 남자와 소녀. 소재만 놓고 보면 언뜻 뤽 베송 감독의 <레옹>을 연상시키지만, 영화는 착각이 불러온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이 임박해 왔다고 느꼈을 때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 로이(벤 포스터)는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십 대 때부터 도박을 일삼다가 암흑가의 조직원이 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소녀 로키(엘르 패닝)는 어쩌면 그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살아볼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그가 돌아갈 곳이 없어진 로키와 그녀의 여동생 티파니까지 거두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이들을 지키며 삶의 의미를 찾고, 로키는 그런 그에게 의지하며 과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이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벤 포스터는 이번에도 압도적이다. 배우로서 훌륭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지 않지만 연기로 이 모든 것을 덮는다. 무명 시절 출연했던 <호스티지>(2005) 같은 B급 영화에서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론 서바이버>(2014), <챔피언 프로그램>(2015)까지 비중과 관계없이 괴물 같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는 이번에도 캐릭터와 하나가 된다. 여기에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엘르 패닝 역시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 외모를 뛰어넘는 재능은 이미 <네온 데몬>(2016)이나 <매혹당한 사람들>(2017)에서 입증된 바 있다. 그녀의 연기 덕분에,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로키의 마지막이 뇌리에 박힌다.

암담한 현실을 걱정하는 로키에게 로이는 “몇 번이고 고쳐 살면 된다”라고 위로하며 갤버스턴에서 행복을 꿈꾼다. 로이가 도피처로 택한 갤버스턴은 한때 그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주었지만, 이곳에 더 이상 낭만은 없다. 영화 말미에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은 첫 장면에 등장했던 허리케인과 맞물리며 커다란 파장을 남긴다. 실제로 허리케인 ‘아이크’는 2008년에 갤버스턴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허리케인과 닮아있다.

영화는 설명식 대사나 장면보다 등장인물의 심리변화에 집중한다. 프랑스 출신 감독 멜라니 로랑은 “프랑스의 영혼을 담은 미국 영화”라고 밝혔다. 어설프게 헐리우드 영화를 흉내 내지 않았다는 점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게 하는 설정, 반전을 극대화하지 못한 구성은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7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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