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愛치과의원 정유란 원장을 만나다

정유란 원장은 대한여자치과의사회 공보이사이자, 얼마 전 유명 문예지 신인 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다. 파주 운정동 주민들과 호흡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다는 정유란 원장을 만나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글쓰기의 즐거움, 세 고양이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 정유란 원장

# 개원의로 살아가기

“환자의 치아가 건강하고 예뻐지는 게 정말 좋다”고 말하는 정유란 원장은 오랜 페이닥터 생활을 접고 지난 2016년 11월, 모두애치과의원을 개원했다. 3년째에 접어든 지금, 환자들에게 편안한 치과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환자별 성향을 꼼꼼히 기록해 온 정 원장의 노력은 많은 환자들의 신뢰로 돌아왔다. “저도 제 성향을 잘 아는 곳에 가고 싶거든요. 제 병원에 오는 환자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어요.”

정 원장은 진료 외에도 환자들과 치과 상담뿐만 아니라 가족, 건강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페이닥터였을 때는 생각지 못한 변화다. “예전에는 원장의 지시에 따라 예약된 환자를 진료하는 것 이상으로는 신경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일하는 기계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요. 지금은 정말 ‘내 환자’라는 생각으로 치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물론 환자를 대하기가 늘 수월하지만은 않다. 다른 치과에서 치료를 오래 받았던 환자들 중에는 의구심을 갖고 정 원장을 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이가 젊은 편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놓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요. 그럴수록 제가 더 잘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치과의사에게 환자뿐만 아니라 스태프, 업체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가끔 애를 먹을 때면 정 원장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면 공부는 기본이고 이재에도 밝고, 말도 잘해야 해요. 성격도 잘 맞아야 하고요.”

정 원장은 진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는 스태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페이로 일했던 경험 때문에 스태프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어요.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주인인 것처럼 일해 달라고 하지만, 저는 자신이 맡은 일만 성실히 해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 해외봉사로 맺은 결실

현재 대한여자치과의사회(이하 대여치)의 공보 이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정 원장이 대여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7살 무렵부터다. 당시 봉사에 뜻을 둔 젊은 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사단에 합류, 필리핀으로 떠났다. “처음엔 대여치가 뭔지도 모르고 쫓아갔어요. 그곳에서 많은 여선생님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하려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후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식으로 대여치 공보이사에 이름을 올린 정 원장은, 대여치에서 2012년부터 시작한 캄보디아 파일린 의료봉사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 대부분입니다. 매년 가서인지 이제는 낯이 익은 사람들도 많아요.”

△ 캄보디아 의료봉사 현장에서 정유란 원장(왼쪽)이 진료에 몰두하고 있다.

의료봉사는 발치와 신경치료 위주로 이루어진다. 대여치 회원 5~6명이 현지 보건소 직원의 도움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진료에만 매진한다. 이번이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파일린 사람들에게 건강한 치아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다.

정 원장은 공보이사로서 각종 행사나 학술대회, 토론회 등에 참여해 대여치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매년 한 번씩 발행되는 소식지 《Wdentist》에 들어가는 모든 콘텐츠는 정 원장이 교정교열하고 직접 인터뷰 기사도 쓴다. 공보이사를 맡게 된 데에는 빼어난 글 솜씨가 한 몫 했다. 그녀는 올해 월간 《순수문학》 신인 소설 부문에 『작은 얼굴』이라는 단편 소설로 당선돼 정식 작가로 ‘등단’했다. “재미있게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에너지가 허락된다면 장편 소설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안녕! 토흐, 치흐, 러흐

정 원장은 이미 2016년에 ‘은갈치’라는 필명으로 《안녕, 치흐》라는 독립출판물을 펴낸 바 있다. 첫 장을 넘기면 현관 앞에 다소곳이 앉아 집사를 맞이하는 노란 고양이 ‘치흐’의 모습이 있다. 정 원장, 아니 은갈치 작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어린 치흐를 데려와 보살피며 한 가족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아기 치흐의 다양한 표정이며 행동이 수준급 색연필 그림으로 담겼다.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다시 펼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세 고양이 토흐, 치흐, 러흐의 집사로 4년째 살고 있는 정 원장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까맣고 하얀 턱시도 무늬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첫째 토흐였다. 토흐는 친구의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 중 막내였다. “어미가 길고양이였는데, 친구의 집에서 새끼를 낳았어요. 새끼가 여러 마리라 분양 때문에 고민하는 걸 보고 제가 토흐를 데려오기로 결심했습니다.”

토흐가 워낙 깔끔한 성격이었던 탓에, 고양이가 다 그런 줄만 알았던 정 원장은 치흐와 러흐를 키우면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해야 했다. 어미를 잃고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치흐는 지금도 정 원장이 ‘엄마’인줄 알고 있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작고 모습도 갖춰지지 않아서 고양이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치흐를 키우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살아남아 준 치흐에게 정말 고마워요.”

△ (사진 왼쪽 맨위) 첫째 토흐, 셋째 러흐, 둘째 치흐 (왼쪽부터)

길고양이였던 셋째 러흐는 화분의 나뭇잎을 뜯어놓고 옷걸이에서 옷을 죄다 떨어뜨려 한동안 애를 먹였다. 말썽쟁이 러흐가 똑똑하다는 걸 알게 된 건, 욕실 유리장에 갇혀 울고 있는 치흐를 발견했을 때다. 앞발로 문을 열어 놓고 호기심 많은 치흐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닫고 욕실을 유유히 빠져나온 러흐. 그런데도 셋 중 서열은 꼴찌다. 몸집도 제일 작고 약하기 때문이다.

치흐는 서열 1위 토흐에게 끊임없이 도전하지만 늘 솜방망이질을 당하고, 러흐는 간식이며 좋은 자리를 죄다 양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만다.

고양이가 왜 좋은지 묻자, 정 원장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냥 예쁘니까요. 말랑말랑한 발바닥부터 하는 짓까지 다요. 진료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던 날엔 어떻게 알고 저를 위로해 주니까요.”

△ 세 고양이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여성 치과의사가 진료와 육아를 병행한다. 정 원장은 이런 의사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힘들다고 말하는 건 엄살일지 모른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같은 입장이 됐을 때 진정으로 그녀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며 다시 진료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저와 잘 맞는다고, 저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괴팍한 환자가 있더라도 대범하게 넘기는, 그리고 그런 환자들이 또 찾는 의사가요. 오늘에 충실하면서 고양이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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