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한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성공한 자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냉혹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에서 소외된 자는 과연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영화 <조커>는 코믹스와 영화를 통틀어 손꼽을 만한 캐릭터 중 하나인 ‘조커’의 탄생기이며 절대악(絕對惡)의 기원이다. 배트맨의 숙적에 그쳤던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과거를 창조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커가 되기 이전,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었던 한 남자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인물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으며, 광대 분장을 하고 상점이나 이벤트 현장을 전전하며 돈을 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세상은 그의 무대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조롱과 멸시를 견디다 못해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배트맨> 속 가상의 도시이자 범죄로 얼룩진 고담은 <조커>에서도 여전하다. 실업난, 극심한 빈부격차, 경제 위기가 대두되는 고담은 현대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아서는 소외계층을 대변한다. 매일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수십 개씩 오르면서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맴도는 삶. 이를 상징하듯 영화에는 그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며, 때로는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카메라 앵글을 써서 사회 속에서 그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각인시킨다.

집단 구타를 모면하기 위한 정당방위가 살인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비로소 그토록 원하던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광대 분장을 하고 금융계 종사자들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거리에는 그와 같은 얼굴을 한 추종자들이 넘쳐난다. 사회에서 외면당했다 해도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영화 역시 그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회는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는다. 단순히 광인(狂人)의 행적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문제와 우리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는 수작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서의 망상과 현실이 뒤섞여 전개되는 서사 역시 흠잡을 데 없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무성영화와 블랙코미디, 스릴러를 영리하게 변주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러면서도 <배트맨> 시리즈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브루스 웨인과의 접점 역시 놓치지 않았다.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과의 관계 설정, 열린 결말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다. 잭 니콜슨, 히스 레저, 자레드 레토 등 그간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들과 비교하는 일 또한 무의미하다. 그는 즉흥연기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들을 완성했다. 23kg을 감량하며 의도대로 “굶주리고 병든, 영양실조 상태의 늑대”가 된 그는, 척추가 그대로 드러나 보일 정도로 비쩍 마른 몸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TV쇼 출연을 앞두고 Gary Glitter의 「Rock and roll part.2」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영화사상 길이 남을 만하다.

“<다크나이트>와 나란히 할 영화”(The Hollywood Reporter), “눈부시게 대담하다”(The Guardian), “올해의 영화”(Empire)와 같은 호평에 이어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0월 2일 개봉.

CINEMA TALK : <조커> 라이브 컨퍼런스

△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토드 필립스 감독(왼쪽), 호아킨 피닉스(오른쪽)

“캐릭터에 에너지를 쏟을수록 더 큰 에너지를 받았다.”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를 연기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커>의 언론배급 시사회가 있었던 지난 26일에는 시사회 이후 ‘라이브 컨퍼런스’가 열렸다. 생중계로 영국 현지를 연결한 가운데,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코믹스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면서, 장르 전복과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베니스영화제 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조커를 연기한 다른 배우들의 작품을 참고했느냐는 질문에는 “많이 참고하지는 않았다”면서 “토드 필립스 감독이 조커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독특한 비전과 스토리”라며 <조커>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또한 어린 시절 학대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아서의 상태를 관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움직임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 영화 <조커> 촬영 현장

개봉 후 결말에 대해 관객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감독은 열린 결말을 의도했다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에 정확한 답은 주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서의 트라우마를 통해 취약계층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 또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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