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희정 | 268쪽 | 값 13,800원 | 수오서재

“그 현장은 하루일 때도 일주일일 때도 몇 달일 때도 있었기에 50년을 넘게 일했지만 아빠는 회사 주소도, 내선 전화도, 명함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직장으로 출근했다면 나는 그 회사로 가 숙제도 하고, 아빠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도 하고, 아빠의 네모반듯한 명함도 만져볼 수 있었을까.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했던 건 아빠가 회사원이, 건설사 대표가, 사장님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긴 경력을 유일한 직업을 그 노동을 감추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참회와 반성이 참 많이도 늦었다. 행여 누군가 아빠의 직업을 물어올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던 낯없던 시간들. 창피한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_ 본문 중에서

포털사이트를 통해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큰 울림을 준 저자는 그전까지 오랜 시간 부모에 대해 침묵해왔다. 그녀의 부모는 글을 몰라 가정통신문 학부모 의견란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줄 수도 없었다. 드라이브나 여행 같은 일상의 여유도 함께 누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묻는 말에 그녀는 거짓은 아니나 솔직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

이제 그녀는 글로 그 시간들을 참회한다. 한 자식의 고백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결국 세상 모든 자식들의 이야기다.

그녀는 “누군가는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고, 또 누군가는 화가 나고, 누군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수 있기에” 부모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을 기억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그러면서 자신을 키워낸 부모의 생,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고백한다.

탈고 후 그녀는 가장 먼저 전문을 읽고 녹음했다. 이는 글을 읽지 못하는 부모에게 그녀가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성 편지다.

저자 소개_ 임희정

10년 차 아나운서. 광주 MBC, 제주 MBC 아나운서로 근무했고, 현재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임희정 아나운서의 나를 붙잡은 말들’을 연재하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다음 <브런치>에 글을 쓴다. 임동명과 조순덕의 딸이다.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