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원식 | 376쪽 | 값 20,000원 | 돌베개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20세기 초, 16세기의 ‘이순신’은 민족 해방의 상징이자 해방 이후에는 국민 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일컬어졌다. 이순신의 영웅 이미지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부터 이어진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논공행상과 실록 등의 기록에서 그는 임금에 충성하는 ‘신하’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시킨 이가 바로 단재 신채호다. 그가 ‘금협산인’이라는 필명으로 국한문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은 그 시발점이 됐다. 여기에서 신채호는 이순신을 임금보다는 나라 또는 국민에 충성하는 근대적 영웅으로 서술했다.

저자는 신채호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로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을 꼽는다. 박태원은 해방 직후부터 이순신전을 여러 차례 연재했으며 《임진조국전쟁》(1960)이 그 종결판이라 할 수 있다. 또 《이충무공행록》(1948)은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1566~1619)이 지은 「행록」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으로, 이후 여러 번역본이 나왔으나 박태원의 번역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신채호와 박태원의 이순신 말고도 저자는 환산 이윤재의 《성웅 이순신》(1931),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1931~1932),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 김지하의 《구리 이순신》(1971), 김탁환의 《불멸》(1998), 김훈의 《칼의 노래》(2001) 등의 작품을 살펴본다. 국내 작품 말고도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 1932~2007)의 『소설 임진왜란』(1992)도 다루었다.

저자는 기존 이순신 연구자들의 오류도 짚는다. 그는 신채호를 노산 이은상이나 김훈의 원조로 언급하는 것이 연구의 부실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 친미 노선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신채호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서다. 저자는 이 때문에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로 변모한 신채호의 사상적 과정과 사적이 연구되지 못했으며, 「수군제일위인 이순신」도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저자 소개_ 최원식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로 옮겨 2015년에 퇴임.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문학》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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