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던 시대가, 교육의 기회조차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이들은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하고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각종 미인대회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는 1970년 영국에서 열린 ‘미스월드’ 대회 현장에서 반대 시위를 했던 샐리 알렉산더와 조 로빈슨, 그리고 대회 1위를 거머쥔 제니퍼 호스텐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샐리(키이라 나이틀리)가 만학에 도전하며 대학 면접장에서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면접관은 샐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미혼모라는 이유로, 학업에 대한 그녀의 열정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그들 앞에서 소신 있게 자기주장을 펼친 그녀는 곧 합격 통보를 받지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육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차별받는다. 평소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해왔던 그녀는 여성운동가인 조 로빈슨(제시 버클리)과 우연히 만나 친분을 쌓고, 조가 속한 공동체와 행동을 같이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당시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된 미스월드 대회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비판하며 이를 전 국민에 알리기로 한다. 샐리는 TV쇼에 출연해 대회가 값을 매기기 위해 체중과 치수를 재고 공개 검사를 시행하는 가축시장과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미스월드 본부는 대회를 ‘가족오락쇼’라고 포장한다.

영화는 여성공동체들의 움직임과 동시에 미스월드 대회에도 주목한다. 대회장 밖에서는 이권을 차지하려는 나라별 경쟁이 치열하고, 후보들은 우승을 거머쥐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다수 매체가 백인 후보에게만 관심을 갖는 현실 속에서, 흑인인 그레나다 후보 제니퍼 호스텐(구구 바샤-로)이 1위를 차지한 사실은 자국 수상이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영화가 던지는 여성차별, 인종차별 같은 화두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 간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샐리는 학업과 여성운동을 병행하다가 어린 딸에게 소홀해지고, 딸을 대신 길러주다시피 한 어머니가 이를 비난하자 “나는 어머니처럼 꿈을 포기하고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기 싫다”고 말한다. 그런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키웠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이 장면은 여성이 출산 후 직장을 다니며 어머니에게 제2의 육아를 짐 지울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닿아 씁쓸함을 남긴다.

미스월드 생방송에 잠입한 여성운동가들의 시위도 인상적이지만, 무대 뒤에서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는 영화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다. 제니퍼에게 “외모로 경쟁하면 결국 여성을 위한 세계가 좁아지지 않겠느냐”고 물은 샐리는 “나도 당신처럼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다”는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영화는 결국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여성 감독을 필두로 여성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차별과 편견에 대항하는 작품을 완성했음에도, 아쉬운 점은 ‘여성운동가는 자신을 꾸미는 데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제목 ‘MISBEHAVIOUR’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사전적 의미이자 접두사 MIS-가 미스월드의 MISS와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해 MIS-BEHAVIOUR, 즉 ‘미스월드를 반대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5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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