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일 오전 5시 58분, 아프간 북부 누리스탄에 위치한 미 육군 전초기지 ‘키팅(Outpost Keating)’에 탈레반 게릴라의 공격이 시작됐다. 이날 벌어진 전투에서 대원 54명 중 8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을 입었다. 영화 <아웃포스트>는 힌두쿠시 산맥에 둘러싸여 방어 불가능한 전초기지로 악명 높았던 이곳에서, 지옥 같은 하루를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2020년 2월 29일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맺을 때까지 이어졌다. 미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이다. 참전 미군 2,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민간인 사상자는 3만 8,000여 명에 달한다.

2011년 5월 알카에다의 수장이자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을 네이비실이 사살하기 전까지, 미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키팅 전초기지에서 전투가 일어난 2009년은 미국의 맹공격에 힘을 잃었던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해 게릴라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영화는 키팅 전초기지에 파견된 클린트 로메샤 하사(스콧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병사들의 일상을 먼저 보여준다. 이들은 게릴라의 예고 없는 공격에 맞서며 전초기지 폐쇄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어느 날, 전초기지를 진두지휘하며 병사들의 신뢰를 얻었던 벤자민 대위(올랜도 블룸)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병사들은 점차 평정심을 잃기 시작한다. 거듭되는 지휘관 교체로 사기가 저하될 무렵, 기지 폐쇄를 겨우 사흘 앞두고 탈레반의 급습으로 전면전이 벌어진다.

2006년 미군은 아프간 북부에 전초기지를 다수 세웠는데, 이는 현지인들과 연합해 파키스탄에서 넘어오는 탈레반 전사를 막으려는 의도에서였다. 키팅 전초기지는 ‘몰살 캠프’라 불렸다. 탈레반 수백 명이 외진 계곡을 둘러싸며 밀고 내려왔을 때, ‘소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었다.

우려가 현실이 된 키팅 전초기지 전투의 처절함은 러닝타임 절반에 생생하게 담겼다. 12시간 동안 이어졌던 실제 전투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느낌이다. 이는 CNN 앵커이자 저널리스트인 제이크 테퍼가 쓴 원작 《The Outpost: An Untold Story of American Valor》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각본, 촬영 현장에 참여해서 전투 상황과 전초기지 세트를 구현하는 데 아낌없는 조언을 한 참전 영웅들 덕분이다. 또 감독 로드 루리는 롱테이크와 다큐멘터리에 주로 사용하는 오너스(무편집) 기법을 활용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완성했다.

아프간 전쟁은 3,000명이 넘는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퇴색될 정도로, 중반 이후부터는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평화협정도 미국이 진정한 승리를 선언하지 못한 상태에서 맺은 반쪽짜리 협정에 불과했다. 역시 아프간 전쟁을 소재로 했으나, 끝내 영웅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론 서바이버>와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이유는 제대로 된 방어체계조차 구축하지 않고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미국의 민낯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평화협정 체결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승리했다고 우기고 싶겠지만, 아프간에서 승리는 국민이 평화와 번영 속에 살게 될 때 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팅 전초기지에서 활약한 3-61기병연대는 아프간 전쟁 최고의 수훈을 올린 부대가 됐고, (베트남전 이후) 생존한 군인 두 명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한 전투로 기록됐으나 참전 군인들의 상흔은 깊다.

영화 말미, 카메라는 기지를 떠나는 병사들을 차례로 비춘다. 안도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얼굴. 훈장이 그들의 악몽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명예훈장보다 더 값진 건 전우애다. 전우의 생명을 살리고자 포화 속에 뛰어드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명예훈장을 받은 타이 M. 카터 상병은 이렇게 말했다. “전투가 벌어졌던 순간은 지옥이었지만, 서로를 지키려고 자신을 희생하며 진정한 형제애를 볼 수 있던 순간엔 천국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9월 23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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