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전문 고등학교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드러머였던 내가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박자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도 지휘자에 대한 두려움. 드러머로서 인정받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걱정을 제어하지 못해 악몽을 꾸거나 구토를 하고,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 된 그런 시간들이다.”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음악영화로 평가받는 <위플래쉬>를 장편 데뷔작으로 내놓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고백이다. 천재적인 드러머의 탄생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2015년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국내외 50여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 후 전원 기립박수를 받았다.

2015년 국내 개봉 당시에도 입소문만으로 158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영화팬의 인생영화로 자리했다. 5년여 만에 이 스릴 넘치는 ‘더블 타임 스윙’이 다시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는 뉴욕의 셰이퍼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버디 리치 같은 전설적인 드러머를 꿈꾸는 신입생 앤드류(마일스 텔러)가 교내 최고의 재즈밴드 지휘자이자 폭군으로 악명 높은 플레쳐 교수(J.K. 시몬스)의 눈에 띄면서 혹독한 지도를 받는 과정을 다루었다.

재즈가 생소한 관객일지라도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도자와 학생 사이에 형성되는 팽팽한 긴장감, 앤드류가 점점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광기에 사로잡히는 모습이 여타 음악영화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흠잡을 데 없는 서사, 속도감 넘치는 편집, 배우들의 연기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셔젤 감독은 음악에 전부를 건 한 인간의 ‘치열함’을 106분 안에 담았다. 앤드류가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교통사고를 당한 몸을 이끌고 경연장에 들어서는 장면이나, 드럼을 쥔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밤새 연습에 몰두하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이 단순히 한 편의 잘 만든 음악영화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앤드류는 성실함과 노력으로 최고의 드러머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플레쳐 교수를 만난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완성될 때까지 플레쳐는 학생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붓고, 앤드류는 오기로 버티기 시작한다. 플레쳐와 앤드류 사이의 응축됐던 감정은 후반부를 장식하는 JVC 재즈 페스티벌 공연에서 폭발한다. 플레쳐의 지휘와 앤드류의 연주가 무대에서 격돌하는 가운데, 앤드류는 마침내 탈피(脫皮)한다.

마일즈 텔러는 드러머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연주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에게도 드럼을 지도했다는 그는, 수준급 드럼 실력은 물론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앤드류의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연기한다.

이 작품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를 거머쥔 J.K. 시몬스는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던 악역을 연기한다. 종반부에 앤드류가 비로소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오르는 순간, 플레쳐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전율을 일으킨다.

10월 28일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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