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영원회귀(永遠回歸)를 통해 삶의 고뇌와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마다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망 전 1881년부터 1888년까지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마을에 머물렀으며, 이때 실버플라나 호수 주변에 놓인 차라투스트라 바위를 보고 영원회귀를 떠올렸다고 한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 또다시 상실의 아픔을 겪은 한 남자가 이 바위 앞에 서서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남자는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피아노 연주를 덜어낸 그의 삶은 쓸쓸하고 공허하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는 피아니스트 헨리 콜(패트릭 스튜어트)이 상처를 딛고 다시금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오프닝씬에서 헨리는 완벽한 연주를 마치고도 불안과 압박을 견디다 못해 무대 뒤편으로 뛰쳐나간다. 영화는 그가 이전에 없던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아내의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그는, 인터뷰 요청 차 찾아온 저널리스트 헬렌(케이티 홈즈)과 대화하며 조금씩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과거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헬렌과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헨리. 그들은 한때 스승과 제자였던 인연으로 점차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다. 헬렌은 헨리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뮤즈로서 그의 음악세계와 내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헨리는 헬렌에게 인터뷰이이자 인생 선배로서 삶에서 음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게 한다.

헬렌은 15년 전 콩쿠르에서 낙방한 후, 차라투스트라 바위 앞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고백과 함께 니체의 영원회귀를 언급한다. 영원회귀는 같은 곡을 수십 년간 반복해서 연주한 헨리의 삶과도 일맥상통한다. 고통과 행복이 공존하는 삶처럼 그는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연주를 계속했다. “영원회귀란 실제로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삶이 반복되었으면 할 만큼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말라는 뜻인지 모른다”는 헬렌의 독백은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는 진심이다.

「슈만, 환상곡 C장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32-10번」, 「바흐, 음악의 헌정, BWV 1079」, 「쇼팽, 발라드 2번 F 장조」 등 러닝타임 전반을 수놓는 클래식 음악은 헨리의 스위스 여행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영화 속 모든 피아노 솔로곡은 2014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르히 살로브가 연주했다.

국내 관객에게 <엑스맨> 시리즈 ‘찰스 자비에’ 교수로 친숙한 패트릭 스튜어트는 다음 생에 피아니스트로 살고 싶었다는 소원을 영화 속에서 이루었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할 줄 몰랐지만, 코치 3명의 지도 아래 수개월 간 피나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번이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인 클로드 라롱드 감독은 스토리 흐름에 맞추어 촬영을 진행해 배우들이 감정선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철학적인 주제를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수작을 완성했다.

음악은 귀로 듣고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준다. 그런 면에서 음악은 곧 삶이다. 영화 말미, 헨리에게 보내는 찬사는 음악에 바치는 헌정사와 같다. “그날 밤, 헨리 콜의 연주를 들은 내 소감은 표현하기 힘들다. 위대한 음악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은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려주었다는 거다. 그의 음악은 슬픔과 그리움, 끈질긴 다짐으로 가득했다. 듣고 있을수록 나를 더 풍요롭고 따스하게 만들었고, 그 순간을 온 세상과 나누고 싶게 했다. 아마 내가 찾을 수 있는 한 단어는 바로 ‘고마움’일 것 같다. 슈만, 바흐, 베토벤을 향한 고마움. 헨리 콜과 삶이라는 음악에 환호하는 모든 이를 향한 고마움.”

영화 원제인 ‘CODA’는 교향곡 또는 소나타 등에서 곡을 끝내기 위해 특별히 추가된 종결부를 뜻한다.

11월 19일 개봉.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