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 펴낸 여선구 원장ㆍ박은혜 박사

△ 여선구 원장(오른쪽)과 박은혜 박사 부부

경기도치과의사회지 「덴티스트」의 주필이자 편집위원으로써 20여 년을 바친 여선구 원장(서울텁츠치과)이 개원 30주년을 맞은 올해, 「덴티스트」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과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는 진료에 매진하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노력의 결실이다.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는 부부ㆍ자녀교육 전문상담사인 아내 박은혜 박사와 공저해 더 특별하다. 2017년, 본지와의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여선구 원장, 박은혜 박사 부부를 만났다.

Q. 《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과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는 개원 30주년을 맞아 낸 책이라 더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개원 30주년 소회와 함께 출간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여선구 원장(이하 여): 하루하루 진료에 매진하다 보니 30주년을 맞이한 것 같다. 이번 책도 월간 덴티스트에 매달 숙제하는 기분으로 썼던 원고들을 모아서 출간하게 됐다. 덴티스트에 기고했던 글들은 이전부터 구하고 싶다는 연락을 후배들에게도 여러 번 받았다. 필요한 사람이 있겠다 싶어서 책으로 묶어 내게 됐다. 특히 《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의 경우 미국에서 신경증적 통증을 연수받았고, 그에 관한 논문도 쓰면서 그동안 치과의사가 많이 접하기 어려웠을 ‘통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 신경증적 통증에 관한 내용을 중점으로, 치과의사가 전반적으로 알아야 할 종합적인 지식도 담았다. 기존 학술서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 의식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박은혜 박사(이하 박): 30년이나 됐다는 게 사실 실감이 잘 안 난다. 병원 운영을 하면서 위기도 있었지만, 힘을 합쳐서 잘 헤쳐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남편은 30년 동안 늘 즐거워하면서 진료를 했다. 생업이라고 힘들어하면서 진료를 했다면 아내로서 미안했을 텐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진료하면서 한 달에 한번 덴티스트에 글 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꾸준히 해왔다. 기고보다도 남편이 자기 책을 먼저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성실하게 써온 결과로 책이 나오게 돼 감동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Q. 「덴티스트」의 전신인 「경기치원」에서부터 연재했던 내용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면서 “아, 내가 이때 이런 글을 썼었지”하고 새삼 느끼면서 감회가 새로웠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다.

여: 맞다. 재편집하는 데만 1년 반을 보냈다. 예전 내용 중에 상황에 맞춰서 바꿔야 할 것들도 있었고, 오류도 수정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니, 지금 쓰려고 하면 절대로 이런 글이 나올 수 없겠구나 싶었다. 당시에는 매달 기고를 한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무척 힘들었지만, 나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어 치과의사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룰 수 있어서 기쁘다. 또 연재 당시를 돌이켜보면 편집부 이사님들이 아이디어를 주고 격려해준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도와준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책은 내 이름으로 냈지만, 협력사역이었다고 생각한다.

박: 글을 쓴 게 7, 8년 전이라 지금 보니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점도 눈에 띄었지만, 수정을 위해서 손을 대면 완전히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시절이 아니면 안 되는 언어적인 부분을 살리고 싶어서 재편집 과정에서 거의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이건 일반인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론 배경이라든가 핵심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다시 읽어보면서 ‘그때 이런 마음으로 썼겠구나’, ‘내가 썼는데 내가 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치과 운영이 한창 잘 되던 시기에 유학을 떠났다.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유학 경험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가족과 다 함께 타지에서 6년을 생활해야 하니 큰 결심이었던 건 분명하다. 평생 벌었던 돈을 공부하는 데 썼지만, 올바른 투자였던 것 같다. 아이들도 자기 일을 찾고 아내도 박사학위를 받게 됐고. 저도 학위와 수련을 했기 때문에 뿌듯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에서 정식으로 석사과정과 수련의 과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려운 만큼 경험한 게 많다. 그런 경험을 잊기 전에 부지런히 적어서 유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Q. 《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에는 임상도 그렇지만 치과의사의 건강을 먼저 진단한 전반부가 인상적이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수년간 몸담은 개원의들은 고질적인 직업병과 싸운다. 치과의사 자신이 건강을 잃지 않으면서 진료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여: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인 진료 자세가 중요하다. 평소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바른 척추, 바른 각도를 위해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보건학을 하면서 배웠던 자세 분석을 이용해 치과의사의 바른 자세는 무엇이고, 어떤 자세가 가장 안전한지 등을 알려주려고 했다. 하루 이틀 진료를 하고 말 것이 아니니까. 기본자세가 무너지면 병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책 전반부에 ‘치과의사의 건강을 진단하다’를 먼저 넣었다.

Q. 수많은 임상사례 가운데 신경증적 통증을 주제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여: 신경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부분 신경에까지 영향을 준다. 신경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날카로워져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통증을 느끼는 것을 신경증적 통증이라고 한다. 특별히 턱 주변에 많은 신경이 있어서, 구조가 틀어져서 신경의 특수 부분이 눌리게 되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신경증적통증에 관해 연구해온 내용들을 치과의사들이 읽고, 아이디어를 얻어 연구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치과에서의 통증은 치과의사밖에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악안면 통증을 전공한 입장에서 이런 연구가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신경증적 통증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더불어 치과의사의 삶이 진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정이 있고 여가도 즐겨야 하고, 타인과도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치과의사가 되려면 단순히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관계의 회복이나 다양한 경험이 누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권 《치과의사를 위한 신경증적 통증》과 2권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로 임상이 중심인 기존 치과전문서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자부한다. 후배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치과의사를 위한 가정과 유학스토리》는 비단 치과의사 가정만이 아닌 모든 가정에서 화목한 생활을 하기 위해 숙지할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가정이 행복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 (여선구 원장 제공)

박: 외적인 성공이나 안정적인 직업만으로는 가정이 화목하기가 어렵다. 부부 갈등을 주제로 강의하다 보면 지위를 막론하고 겪는 문제가 비슷하다. 열심히 살아도 자꾸 싸우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화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려면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저도 그런 것을 깨닫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 행복한 가정, 가족 간의 관계를 좋게 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 회복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외부인보다는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그런 면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 부부간에 역할 분담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사회도 구성원 각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 있고 여기에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도 같다고 생각한다. 가족도 아빠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역할 분담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가정의 질서가 깨지면서 아이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가장이 리더의 역할을 분명히 할 때 가족이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일관되게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상징적인 자리”라고 썼다. 가정이 있는 치과의사들도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밖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진다고 해서 그 외의 부분들을 아내에게 맡겼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탓만 한다면 그건 옳지 못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다. 아이들이 올바른 질서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집안에 안정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아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미국 생활 6년 동안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박: 큰 꿈을 안고 떠났는데 생각보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영어로 소통하는 데 스트레스도 컸다. 가전제품 하나 고치는 것도 어려웠을 정도로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배우는 건 상당히 많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자유분방함보다는 질서가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 가족이 거주했던 동부지역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사람들도 예의가 발랐다. 영화에서 보는 미국은 일부에 불과하다. 인종차별도 있지만, 보스턴에서의 6년은 환경도 깨끗하고 상당히 즐거웠다. 무엇보다 미국은 ‘다름’을 인정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무척 좋았다. 우리나라는 평준화를 강요하는데, 미국은 잘하건 못하건 다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런 점은 우리나라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미국은 사교육이 없지만, 아이들이 초 중등 때 이미 학교에서 기반을 다졌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려운 공부도 다들 해낸다. 주요 과목마다 과제도 엄청나게 내주는 데 그걸 다 해낸다. 교사에 대한 예우도 철저하다. 우리나라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공교육이 지금보다 더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개원가는 치과 종사인력 구인난이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어려움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해있다. 같은 개원의이자 회원으로서 치과계와 경기도치과의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여: 치과위생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치과위생사에게 중요한 역할을 다 맡겨놓으면 운영이 힘든 치과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치협에서 DA제도 추진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치과조무사라는 별도 인력을 양성해나가는 건 개원의들이 구인난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 위험도가 높은 수술이나 신경치료 등의 수가가 여전히 낮으므로 적절한 수가가 실현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경치는 타 지역에 비해서 학술적인 부분이나 소통에 있어서 경기도 규모가 큰 데 비해 굉장히 회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 문제로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권력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면서 회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여: GAMEX 학술대회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경증적 통증에 관한 주제로 강의하고 싶다. 또 여성 치과의사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 회원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가정 문제 등을 주제로 아내가 강의해도 좋을 것 같다. 치과 지식이나 임상술기를 위한 강의들도 중요하지만, 치과의사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데 도움을 주는 강의도 있다면 회원들의 가정이 더 단단해지면서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진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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