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소리] 길

이미연 논설위원

2026-02-26     이미연 논설위원

출퇴근길에 노란색 운전학원 자동차를 자주 마주친다. 주로 다니는 길이 초보자가 돌아다니기에 마음 편할 정도로 아주 한산하지는 않은데, 너른 외곽도로이다 보니 그럴까? 중간에 네 칸 연속 차선이동과 직후의 좌회전 콤비네이션이 필요한 길은 생 초보가 지나기엔 좀 무리여서 항상 노란 차들이 정체를 유발하기는 하나, 나부터도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업보로다 생각하고 양보하게 된다. 같이 쓰는 길인데 그러지 않으면 사고밖에 더 나겠나.

하기는 그 고비만 넘기면 길도 직선형으로 단순하고 신호등 간격도 긴 편이다. 내가 도로주행 연습하던 길도 비슷했다. 학원에서 출발해 42번 국도를 따라가다 우회전만 제대로 하면, 넓은 도로를 쭉 따라 가다 고가 앞에서 유턴하여 돌아오는 단순한 코스이었다. 사람이 뭐든 처음 배울 때 성향이 같이 생기는지, 요즘도 초보가 많을 법한 길만 골라 다니기는 한다.

운전면허도 또래보다 꽤 늦게 땄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해서 바로 차를 몰고 다니고 싶어할 거라 생각했단다. 나는 얼리어댑터였던 적이 없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희망학과 고를 무렵에 나이트 오브 골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주장해서 그랬을까? 대신 브릿지 오브 골드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을 얻게 되긴 했다. 금값이 너무 올라서 무서울 뿐이지.

외려 나는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학교 다니랴, 학과 시험보랴, 영어학원 다니랴, 저녁에 술 먹으랴, 미팅하고 연애하랴 바쁘게 사는 와중에 머나먼 운전면허시험장을 오가며 필기시험을 보고 학과시험을 되풀이하며 인지대 우수 납부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경이롭게 여겼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는 딱히 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경기도민이 되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출퇴근이야 통근버스가 시켜주었지만, 용인과 수원 경계에 걸쳐 생활하게 되니 중간에 오갈 일이 생기면 불편했다. 버스노선은 적고, 택시는 행선지를 고려해서 골라 타는 게 복잡한데다 요금도 들쭉날쭉 이었다. 같은 도민 선배와 동료들은 대부분 차가 있었지만, 매번 얻어 타기도 미안해서 결국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을 했다.

이제는 직장인이니 친구들보다 편하게 따리라 마음먹고 운전면허 전문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그 즈음에 운전면허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한 번 쓸고 지나갔던 터라, 실기검정은 물론 수업관리도 학교 못지 않게 깐깐했다. 수업시간에 5분만 늦어도 수업을 받을 수 없었고, 주말에 몰아 듣는 것도 두 시간 이상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낯선 길이 아니라 연습 시간에 몇 번이고 돌아 본 코스에서 시험을 본다는 것이 제일 장점이었는데, 낮에 일하는 입장으로 열 시간 수업을 채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퇴근 후는 맘이 더 편한데, 안 그래도 시한폭탄 같은 초짜들이 어두워진 도로에서는 더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니 강사들이 저녁수업을 없애라고 한창 쟁의 중이었다. 새벽 시간대는 도로에 차가 적긴 하지만 멀리 가는 사람들이 신호 하나 놓치면 출근 시간이 달라지니 주변 운전자들의 서슬이 날카로웠다.

물론 인생은 언제나 포기하면 편하다. 전문학원인 만큼 ‘빨리’ 따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니 느긋하게 배우기 참 좋은 곳이었다. 공자님 말씀에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심지어 배우러 간 곳에서 어떻게 가르침이 없으랴.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지침 몇 가지는 도로주행 강사님이 일러준 말이다.

액셀도 밟지 않는 장내에서 연습면허를 따고 도로에 나가보니 갑자기 시골쥐가 된 기분이었다. 가고는 싶지만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다른 차들이 들어오고, 사거리신호며 횡단보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보행자까지 신경쓰자니 머리가 하나 더 있어도 운전하기에 모자랄 것 같았다. 정신이 나가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강사가 차를 갓길로 세우라고 지시했다. 지금 장애물이 많아서 피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지 않았냐며, 장애물을 찾으면 장애물만 보이고, 길을 찾으면 길만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장애물을 따지지 말고 길을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출발하니 같은 도로인데 시야가 달랐다. 초점이 바뀌니 장애물은 배경이 되고, 그 사이로 차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길이 보이니 전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간 길은 내 차의 궤적(軌跡)이 되었다. 걸림돌을 요리조리 피하느라 구부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순리에 맞춰 길게 이어지는 흔적이 남았다.

결국은 마음가짐이다. 마음에 담은 목표가 시야를 만들고, 그 시야를 따라 지나온 길이 그 궤적을 남긴다. 누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려면 지나온 길을 보면 된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 살았는지, 장애물에 한눈을 팔았는지, 혹은 그저 주변상황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살았는지.

얼마 전, 다음 삼 년간 우리 경기도치과의사회를 이끌 리더가 위현철-김광현 당선자로 정해졌다. 모두가 애쓴 끝에 치열한 결과가 나왔고, 당연히 아쉬움이 있을 것이나 우리 회와 회원을 위하는 마음으로 성숙한 축하를 건넨 김욱-이선장 후보자께도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리더가 되겠다는 것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의 앞날을 열어가기 위해 자신의 비전과 노력을 바쳐 이바지하겠다는 뜻이다. 그 진심을 가늠할 기준은 그의 삶의 궤적이다. 우리 회원을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냈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얼마나 개척해 왔는지를 보면, 그 마음가짐과 앞으로 할 일을 알 수 있다.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화합보다 개인적인 한풀이와 분쟁만 일삼았던 이들이야 앞으로 그가 추구할 것 역시 뻔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우리 협회의 대표를 뽑을 순서이다. 우리 회원이 안전하게 나아갈 길, 더불어 우리나라의 구강보건이 향해야 할 올바른 길을 바라볼 수 있는 대표가 선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치과의사 되길 참 잘했다는 말을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것을 제발 듣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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