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논설위원

지난 가을 집 난방시스템이 말썽을 부렸다. 난방을 켜지 않았는데도 바닥 군데군데에서 뜨끈하게 열이 올라왔다. 날이 추워져서 중앙난방을 시작한다는 공지가 있던 다음부터였다. 그 뒤로 날씨가 잠깐 풀린 탓에, 도리어 땀이 날 정도였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컨트롤러를 꺼두라 한다. 계속 꺼두었다 하였더니, 셋팅값 문제라며 실내온도보다 낮게 해두고 끄란다. 지금도 최저인 13도로 셋팅하고 꺼둔 상태라 했더니 그제서야 분배기가 고장난 것 같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바꾸는 게 좋겠냐고 물었더니, 보통은 난방이 안되는 게 문제이니 따뜻하면 조금 지켜보시란다.

그렇게 믿고 지켜본 결과는, 작년 최한월 요금의 두 배가 넘는 난방비 폭탄이었다. 완전히 고장난 것 같단다. 뒤늦은 12월에 부랴부랴 분배기를 바꾸었다. 다시 한 달을 기다려보니 난방비는 더 많이 나왔다. 이래서야 구관이 명관이었던 셈이었는가 울컥해서 따져보니, 집에 털북숭이 식구도 새로 들어온 탓에 예년보다 따스하게 지냈던 것도 같다.

우리집 거실은 원래 좀 과장해서 시베리아 벌판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늘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온수매트다 손난로다 해서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온도감이 동떨어져 있을까 더듬어보다 어릴 적이 떠올랐다. 옛날 집들은 다 외풍이 셌고, 나는 거기에 익숙해졌던가 보다.

어쩐지 겨울 하면 내가 자란 집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 동네의 정경이 먼저 그려진다. 동이 트기 전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집집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와, 차가운 새벽 공기에 섞여 콧속으로 들어오던 연기 냄새가 기억난다. 마냥 맵싸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덜 마른 솔가지나 나뭇잎이 섞여 타는 듯한 풋풋한 기운에, 밥물이 끓어 눋는 구수하고도 달큰한 내음이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 고즈넉한 시골 마을을 소리없이 복작복작 깨우는 듯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풍경이라 더 정겹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할아버지댁 부엌 아궁이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두 개 걸려 있었다. 둘 중 더 큰 솥에는 늘상 뜨거운 물이 끓여져서 찬물을 섞어 따신 물을 쓸 수 있게 해 두었고, 부뚜막 위에는 식지 않게 음식을 보관해 두었다. 부뚜막이 따뜻하니 꼬물거리는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가 올라 앉아 졸고 있을 때도 있었다. 부뚜막에서 이어지는 디딤돌에 발을 내딛을 때의 매끈하고 따끈한 감촉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느낌이 너무 좋고 신기해, 일을 돕는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부엌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다.

내게는 옛날 이야기속처럼 고색창연한 모습이었지만, 할아버지댁은 내가 태어날 무렵 신식으로 새로 지었단다. 부엌도 아궁이도 나름 현대적인 감각으로 건축한 것이란다. 과연 최신식 아궁이의 화력이 대단해서, 구들장을 타고 아랫목으로 올라오는 열기는 장판에 군데군데 검게 탄 자욱을 만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귀애하는 맏손녀였으므로, 한겨울에 시골집에 갈 때면 언제나 안방의 할머니 곁 아랫목에서 잠을 잤다. 바닥은 지져질 듯 뜨거워도 위쪽의 공기는 코가 베어질 듯 차가웠다. 온탕과 냉탕사이 두툼한 이불을 덮고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던 감각이 오늘에도 생생하다 손녀 감기들세라 군불을 어찌나 때셨는지, 두꺼운 요를 깔고 자는데도 자다보면 등어리가 너무 뜨거워서 이불 위로 탈출하곤 했다. 등을 식혀주는 서늘한 이불의 감촉이 그렇게도 반가워서 한참 이불 위를 굴러다니다 보면, 다시 추워져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몸을 짓누르는 듯 둔중한 이불의 무게는 추울 때는 신기하게도 가볍게 느껴졌다. 뜨끈한 바닥과 차가운 공기, 두툼한 목화 솜이불의 무게와 할머니가 가만가만 토닥여 주시던 손길, 추억은 냄새와 온도, 촉감으로 남았다. 도리어 감각의 기억 위에 현재의 감상(感想)이 더해지는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겨울의 온도가 가난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따뜻한 실내와 대조되게 외부에 있는 화장실의 도기가 피부에 닿는 차가운 촉감이 서러웠다는 말에 마음이 안쓰러웠다. 나의 옛날은 다행히도 차가운 외풍이나 뜨겁던 바닥도 결핍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차라리 온도를 직접 전하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그랬을까. 오히려 겨울의 따뜻한 온기가 기억난다. 어쩌면 추억에 감정을 덧입히는 건 전적으로 마음의 몫인가도 싶다.

요즘 아침에 따뜻한 물로 씻을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물가가 너무 올랐고 분배기를 고치고 나서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고 불평을 하려다가도, 영하 10도의 아침에 별다른 수고 없이 따뜻한 물을 얻을 수 있다니, 옛날 임금님의 호사보다 낫다고 납득하게 된다. 생활 수준이 점점 좋아지다 보니 감사할 일도 자꾸 당연하게 여기고 만다. 이미 주어진 것이라고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오래된 것이라고 무조건 버려야 할 적폐도 아니다.

아들들이 구들장을 기름보일러 난방으로 바꾸고, 가스렌지가 개비된 입식 부엌으로 개조해드렸을 때 할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오래된 흙집을 부수고, 멀끔한 ‘신식’ 아궁이가 있는 벽돌집을 지으셨을 때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직접 살림하는 고생을 겪어보지 못한 나에게 이르러서는, 불편하고 연기나는 아궁이조차 그리움의 온기로 기억된다. 우리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현재나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는 형태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거인들의 어깨에 빚지고 선 우리에게, 현재는 결국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변증법적 혁신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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