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유성 회장(비급여공개저지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
△ 최유성 회장(비급여공개저지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와 의료인들은 묘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국민들이 정말 어려움에 처할 때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대상이면서도, 그들이 너무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생각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어려운 처지이기에 그러한 심정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다소 소모적일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들이 급하다는 생각으로 의견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최근 법무부는 ‘로톡과 같은 변호사소개 플랫폼을 리걸테크의 검색 분야 서비스 중 하나인 고객의 상황에 맞는 변호사를 검색하는 서비스’라고 하였고, 이에 변협에서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소속 변호사의 징계를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법무부는 변협 징계권에 대한 감독권 행사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변협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법조인들이 비록 상인과 같은 이익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제도적인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성직자와 같은 ‘개인의 공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법조인이 나름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법공정성을 보호하게 되는 역할을 한다면, 거시적 관점에서 공공성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1999년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언급한 ‘변호사는 준사법기관이며, 공익적 성격을 강하게 띠어 다른 사업자단체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는 입법자의 의도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변호사소개 플랫폼은 결국 주식회사이고, 주식회사는 주주의 왕국으로써 주주는 선출되지 않는 통치자이고, 근로자는 피통치자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따라서 ‘변호사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이들 주식회사의 관심사가 결코 될 수 없고, 만약 변호사소개 플랫폼에 다수 변호사가 종속되는 경우, 변협회장 선거는 특정 사기업 노조위원장 선거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법무부의 ‘중개형 플랫폼은 위법이나 정액의 광고비를 받는 광고형 플랫폼은 허용된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정액의 광고비에 관한 내용은 혹시 광고행위가 아닌지를 의심케 하는 ‘요소’에 불과하며, 변호사의 종속이 발생된다는 결과론적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변호사의 사기업 종속이라는 추상적 가치와 소수만이 경험할 불공정성 따위는 다수에게는 무관하다는 위헌적이고 직무유기적인 다수결을 지적하고 있다. 즉 다수의 공공성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어리석음과 불의를 부를 때를 대비하여, ‘논리적 올바름’이라는 법치주의의 가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읽고 보니, 비급여 공개에 대해서는 의료전문가 집단이 너무나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 하에서 비급여제도의 취지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건만, 보장성 확대라는 정책목표와 국민들의 표심을 이용하여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변협의 경우와 같이 단순 변호사소개를 넘어 그저 가격만의 요소로써 의료행위를 평가하는 플랫폼이 등장하려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지난 짧은 시간 동안 진화해 온 플랫폼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끝을 감히 상상해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은 인간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이에 대하여, ‘입법단계와 최종제출기한까지 넘긴 시점’이라는 자포자기적 대응전략, 대정부 투쟁의 어려움, 시대의 대세와 같은 핑곗거리로 안이하게 대처하는 의료계 단체들의 행태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동의하기 힘들다. 특히 고시와 제출기간 동안 보궐선거를 치른 치과계의 경우에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 적시에 대처하지 못했던 지난 집행부의 과오로만 돌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만약 그러한 논리라면, 강경한 대응을 천명했던 보궐선거 과정의 공약은 결국 전후 사정의 무지에서 나온 무모함이거나 그저 당선만을 위한 포퓰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의료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잃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내적인 동력이 분출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정당한 관점들이 대다수 국민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그저 공급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양심과 책무라는 사실을 아무리 포장하려고 해도 논리 전개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렇게 주장하는 우리 자신들도, 사실은 법조계와 의료계의 ‘공급자’이기 이전에 ‘소비자’이고,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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