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세자비’이기 이전에 다이애나 ‘스펜서’였던 한 여인의 이야기. <스펜서>는 샌드링엄 별장에서 왕실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다이애나의 사흘을 담았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의 외도와 이를 묵인하며 자신에게 완벽한 왕세자비의 자세를 강요하는 왕실에 환멸을 느낀다.

<재키>로 호평받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지금껏 다이애나를 다루었던 영화들과 달리, 온전히 다이애나의 심리에 집중한 작품을 완성했다. 별장에서의 휴가는 사실상 다이애나에게 또 다른 통제나 다름없다. 왕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파파라치를 핑계로 창문 밖조차 내다볼 수 없게 하고, 찰스는 용서를 구하는 대신 그녀에게 이중적인 모습을 요구한다. 압박감이 더해질수록 그녀는 우울증과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환영까지 보게 된다.

감독은 다이애나에 관한 수많은 자료에 상상력을 더해 서사를 구상했다. 그가 밝힌 대로 <스펜서>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다. 영화적인 상상력은 아름다운 미장센과 만나 환상적인 영상미를 구현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끝내 자아를 찾아가는 다이애나의 강인한 면모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완벽한 연기로 설득력을 얻는다.



다이애나는 1996년 찰스와 이혼 후, 이듬해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36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왕실은 영국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그녀의 장례를 왕실장으로 치렀다. 행복과 거리가 먼 결혼이었지만 두 아들에 대한 사랑만은 각별했다고 알려졌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다이애나의 모성애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됐으며, 자식들과 함께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영화 전반에 걸쳐 다이애나를 옥죄는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돼, 러닝타임 116분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감독은 그녀의 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일지 모를 사흘을 통해, 대중이 왕세자비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둔다. 그녀가 잠시나마 스펜서로 돌아간 순간에 흐르는 ‘All I need is a miracle’은 영화의 백미.

3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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