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진(의정부분회 양서영 회원 자녀)

신발은 가벼웠지만 발은 무거웠다. 티머니로 미리 보성으로 가는 차편을 예약해 뒀다.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도착했다. 대합실에는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군인과 입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을 곧추세운 아가씨, 며느리에게 가져갈 김치통이 든 보자기를 바닥에 부려놓은 노부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얼굴이 벌게져 있는 엄마가 보였다. 주변에 둘러서 있는 상가에는 야구 모자를 둘러쓰고 허리를 숙여 우적우적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있는 아저씨도 있었다. 버스에 휴대폰에 찍힌 바코드를 찍고 올라탔다. 이미 옆 좌석에 어깨가 넓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다리를 쩍 벌린 남자는 내 쪽의 안전벨트를 가져가서 한 채 벌써 잠이 든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뒤집어보고 해서 겨우 내 벨트 구멍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오 년 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교회에 날마다 다녔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엄마는 눈이 벌게져서 집에만 있었다. 오빠는 엄마가 무료하게 집에 있지 않기를 바랐다.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던 나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과외 등 닥치는 대로 해서 모았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바로 카센터에 취업했던 오빠와 돈을 합해서 엄마에게 중고차를 선물했다. 많이 힘들어했고,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오빠와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했던 것이다. 전 주인이 차를 잘 관리했는지 깨끗하고 멋졌다. 엄마는 운전면허를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다. 엄마는 뜻밖의 선물에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차츰 엄마는 차를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는 운전 연수를 받았다. 덕분에 나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마중 나오기도 했다. 차 안이 매우 깨끗하고, 여러 가지 부속품들이 늘어났다. 엄마는 차가 생기면서 조금씩 일상을 되찾는 듯했다.

학교 과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고 조교가 점심 먹고 학우들과 교실에 들어오는 나를 불렀다. 몇 달 전 아빠 소식을 조교에게서 전해 들었던 터라 왼쪽 머리에 뭐라도 맞은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조교의 입이 아 모양으로 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조교는 떨고 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손이 떨림이 조금 멈췄다. 마음을 부여잡고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응급실에 해 질 녘에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서는 앰뷸런스에서 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목소리와 앙칼진 목소리, 서로 몸을 부대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 간호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환한 불과 어우러져 긴박함을 느꼈다. 응급실 문 앞에서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옷에 핏자국이 묻어있고 찢긴 채로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의사는 선 채로 엄마의 이마에 식염수를 부어가며 흉터를 꿰매고 있었다. 엄마는 하지 말라고 의사에게 욕을 퍼지르고 있었다. 남자 간호사 두 명이 엄마의 손과 몸을 누르고 있었다. 옆에 먼저 오빠가 와 있었다. 상대의 졸음운전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 차로 기도원에 가던 중 반대 차선에서 트럭이 와서 부딪쳤다는 것이었다. 그 차에는 엄마와 목사님, K 엄마를 비롯한 집사님들 세 분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중 K의 엄마는 뒷좌석 중간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다가 사고 당시 머리를 숙였다고 했다. 그 자세로 앞으로 튀어 나가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오빠는 말했다.

“엄마! K 엄마가 돌아가셨대.”

“아휴 내 갈비뼈는 언제나 붙는다니? 의사가 풍선을 열심히 불란다. 폐가 좋아지도록 말이야.”

“엄마가 운전했잖아. 엄마, 사람이 죽었어. 엄마 손에 달려있었어. K의 집 식구들은 자기 엄마를 보내고 이제 어떻게 살아, 엄마는 그렇게 노력 안 해도 금방 나을 거잖아.”

“다 자기 운인 거야.”

엄마는 병원 복도를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풍선을 불었다. K는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정신과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했다. 그 후로 독일에 사는 언니 집에 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K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회 친구 일곱 명을 할머니 과수원에 초대했다. 할머니는 보성군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2박 3일간 복숭아를 실컷 먹고, 낮에는 복숭아나무 사이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고 춤을 추고 밤에는 귀신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K는 자그마한 팔뚝에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왼손으로 고추를 한 개 잡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썰었다. 끓고 있는 된장국에 넣었다. 된장국은 매운 고추 맛이 조금 들어갔다. K가 끓여주는 된장국은 엄마가 해 주는 밥보다 혀에서 단맛이 느껴졌다.

“보성에 살아.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살고 있대.”

마당발인 교회 친구가 K의 소식을 말해줬다.

보성 터미널에서 내려 네이버 맵으로 보성리를 검색했다. 아버지의 고향이긴 하나 직접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야트막하고 작은 집들,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몇 개의 상가들이 모여있었다. 코에 들어오는 보성군의 바람은 시원했다. 건물들이 나를 압도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가 두 명 있다는데 사 갈 것이 딱히 없었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상가들에 아이에게 먹을거리가 있을 법한데 내 눈에 보험회사나 편의점만 보였다. 거리를 따라 올라가 봤다. 찾다가 낡은 간판의 피자집을 겨우 찾았다.

반가운 나머지 피자집을 가리켰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 옆에 서 있던 아이는 눈을 잡고 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아이는 눈을 오른손으로 가리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손톱에 뭔가 물컹한 것이 걸렸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내가 손을 뻗었던 것이 아이의 눈에 닿았던 것일까? 아이가 왜 하필 거기에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모른척하고 싶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일으키고 아이의 눈에 바람을 불어댔다. 엄마는 일어섰다. 아이 엄마는 나를 노려보더니 병원에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의사는 검사를 해보더니 전치 1주라면서 각막에 찰과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왜 아이가 거기 있었으며 내가 뭘 잘못했는가를 아이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K와 약속 시간에 늦었다. 아이 엄마에게 내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는 병원을 나섰다.

K에게 전화를 걸었다. K가 매운 고추가 들어간 된장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K의 집에 도착했다. 보성 터미널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한참을 가더니 어느 대문 앞에 섰다. 따라 들어가니 문에 붙어있는 조그만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문 옆에 방이 두 개 있는 곳이었다. 신발을 벗지 못하고 서 있었다. 피자를 사 가지고 온다는 것이 깜빡 잊었다. K의 큰딸은 내가 현관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내 양손을 살폈다. 아이는 고개를 가로로 두 번 저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지폐를 만져봤다.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K의 흰자위에 검정 반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기에 내 눈을 대고 말했다. K는 전에 나를 대하던 미소 있는 얼굴로 나를 봤다. 안 변한 것은 너야 K,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좌우로 씰룩거릴 뿐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키가 천정에 곧 닿을 정도여서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방과 화장실이 붙어있는 곳에서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보성에 사니 조금 넓은 집에 살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어서 들어와. 오랜만이다.”

“미안해. 그 말하려고 왔어.”

“나 다 잊었어. 너도 이제 잊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기 엄마, 안에 있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분, 그분 안에 계셔요?”

“서울에서 친구가 왔어요.”

“우리 B가 새댁 친구가 뻗는 손가락에 눈을 다쳤어. 아기 엄마 친구는 우리 B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어린 사과와 치료비야. 친구가 이리로 걸어오는 것을 봤어.”

K가 내 눈을 쳐다봤다. 나는 K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이 엄마는 치료비와 정신적인 위자료를 요구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섰다. 나도 돈이 없다고 엄마에게서 돈을 받아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뒤를 돌아봤다. K는 땅바닥에 무연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피자 냄새가 났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구겨진 지폐가 있었다.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