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박 | 옮긴이 정민ㆍ김영은ㆍ손균익 외 | 300쪽 | 값 17,000원 | 휴머니스트

조선 후기, 일생을 원예에 바칠 정도로 꽃을 사랑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꽃의 명칭과 키우는 법, 꽃말, 열매의 생김새, 맛과 향, 보관법 등 각종 정보를 섭렵했다. 이를 바탕으로 꽃의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하고 화훼의 등급을 나누어 짧게 평을 달았다. 그가 화훼에 관해 쓴 각종 글은 강희안(姜希顏)의 《양화소록》과 함께 조선 시대 2대 원예전문서로 꼽히는 《화암수록》으로 남았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화훼를 가꾸며 지냈는데, 말년에는 살림살이를 탕진할 정도로 화훼 수집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가 화훼에 빠진 이유는 역적 집안 출신으로, 출세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거처인 백화암(百花菴)에는 사시사철 온갖 꽃이 만발했으며, 유득공, 채제공, 이용휴, 목만중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러 문인의 글에 등장하기도 했다. 출세는 포기했어도 원예에서만큼은 일인자가 되고 싶었던 ‘유박’ 이야기다.

《화암수록》 원문에는 저자를 파악할 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실려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저자가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유박의 시조가 송타(宋顏)의 작품으로 2002년 수능시험에 출제됐을 정도다. 역자인 정민 교수는 각종 문집을 뒤져가며 끈질긴 추적을 거듭한 끝에 《화암수록》의 저자를 찾아냈다. 이어 2003년 논문을 발표, 저자를 ‘유박’으로 바로잡았다. 정민 교수는 최초로 원문을 번역하고, 저자를 찾는 과정에서 발굴한 각종 문집 속 백화암에 대한 글도 부록으로 실었다. 다음은 유득공이 유박 선비와 백화암에 대해 쓴 〈금곡 백화암 상량문〉 중 일부이다.

“그는 어떤 사람의 집에 기이한 화훼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천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구하였고, 바다에서 온 배가 감춰두고 있는 것을 엿보아 만 리 떨어진 데 있는 것이라도 반드시 가져왔다. 여름에는 석류, 겨울에는 매화, 봄에는 복사꽃, 가을에는 국화를 길러 네 계절 내내 꽃이 끊이지 않았다.”

유박은 당대 이미 고전으로 자리 잡은 《양화소록》이 주로 중국의 사례를 많이 참조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여전히 화훼의 지위와 체계가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그 나름의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고 화훼의 특성을 꼼꼼히 정리했다. 지금은 흔히 쓰이는 방식이지만,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한 것 또한 그가 최초다. 여기에 〈화암구곡〉, 〈매농곡〉 그리고 한글로 적은 〈촌구〉 등 꽃을 소재로 다양한 글을 담은 《화암수록》은 화목(花木)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만하다.

저자 소개_ 유박(柳璞, 1730~1787)

본관은 황해도 문화(文化), 자는 화서(和瑞), 호는 백화암(百花庵)이다. 몰락한 소북 집안 출신으로 평생을 황해도 배천(白川: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금곡포(金谷浦) 일대에서 살았다. 화훼 취미가 남달라 거처를 ‘백화암’이라 이름 짓고 온갖 화초를 가꿨다. 《화암수록》은 폭넓은 원예 지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 후기 원예 문화의 주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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