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가 비록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삶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아리카와 히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한 남자와 고양이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미야와키 사토루는 고양이 ‘나나’에게 새로운 집사를 찾아주기 위해 집을 떠난다. 나나를 맡아주겠다는 친구들을 차례로 만나는 동안, 영화는 여행길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주인공의 과거로 관객을 이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이모와 함께 지내던 어린 시절을 지나,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첫사랑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소환한다. 그 안에서 고양이는 가족 간의 다툼도 눈 녹듯 사라지게 하고, 친구와 각별한 우정을 쌓게 하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계기를 만든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뿐만 아니라 고양이로 인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깨닫는 ‘사람들’은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이다. 사토루의 친구들은 사토루와 나나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코스케는 강압적이기만 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며, 스기는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길고양이였던 나나는 사토루를 비추는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사토루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나나에게서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 ‘하치’를 떠올리고, 차에 치여 죽을 뻔했던 나나를 가까스로 살린다.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회상 장면을 비롯해 그가 그토록 애착을 가진 나나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영화 말미에 드러난다. 길고양이와 다름없는 인생이지만, 남은 날들을 밝고 의미 있게 보내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로드무비답게 아름다운 풍광은 영화 전반을 수놓는다. 구름에 둘러싸인 후지산 절경, 옛날 집들이 남아 있는 도치기 현, 기타큐슈의 유채꽃밭 등은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특히 사토루가 부모의 묘지를 찾아가서 나나와 함께 무지개를 바라보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사토루와 나나의 교감은 특별한 대사 없이도 관객에게 전해지는데, 나나의 속마음은 배우 타카하타 미츠키가 목소리 연기로 대신했다. 나나의 행동이나 표정, 눈빛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고양이 ‘톰’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공신. 때문에 목소리 연기가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다. 톰은 영화 <산의 톰씨> 외 다수의 광고에 출연한 바 있으며, 차에 치인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컷을 직접 연기했다. 사토루 역의 후쿠시 소타는 앞발에 맞아가면서 톰과 친해졌다고 밝혔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관객이나 그렇지 않은 관객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중에서도 사토루의 이모 소노코 역을 맡은 다케우치 유코는 씬스틸러라 할 만하다. 일본아카데미 여우주연상 3회 수상자답게, 극 중 결혼도 하지 않고 사토루를 맡아 키우며 빈자리를 메워주려 노력하는 인물을 가감 없이 연기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소노토와 사토루의 대화는 가슴 먹먹하게 하는 장면 중 하나다. 관객에게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시선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완성도를 높인 탄탄한 각본은 원작자 아리카와 히로가 히라마츠 에미코와 공동 집필했다.

5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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