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야생 동물들은 좁은 동물사(動物舍) 안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그 중에는 동물원이 아니면 돌아갈 곳이 없는 종(種)들도 있다. 선천적인 기형으로 태어나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동물원은 일종의 보호소나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은 지금까지 동물원을 ‘동물 구경하러 가는 곳’이라거나 ‘이익을 위해 동물의 자유를 빼앗고 가두어두는 곳’으로만 생각했던 이들에게 진짜 동물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인 청주동물원의 사육사와 수의사들은 동물들이 이곳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돌본다. 더 이상 야생에서 살지 않지만, 야생성은 잃지 않은 동물들은 그들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몸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사육사의 말처럼 그들은 “동물이 좋아서”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는 어미가 돌보지 않아 사육사의 손에서 자란 유황앵무새 ‘체리’, 막 태어난 물범 ‘초롱이’, 이곳에서 평생을 산 호랑이 ‘박람이’,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사람이 친숙한 표범 ‘직지’, 그리고 동물원 내 서식지외보전기관에서 살아가는 삵 ‘경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경수를 비롯한 삵들은 본래 서식지가 다시 살 만한 곳이 될 때까지 서식지외보전기관에서 보호를 받으며, 수의사들은 삵이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우리가 몰랐던 동물원의 이면을 놓치지 않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동물원의 야생동물 대부분은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싶어도 국내에서는 살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 또한 동물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에는 매일 동물사를 치우고 먹이를 주는 일 외에도 동물의 상태를 살피고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는 사육사들의 일상이 있다.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그들에게 동물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물범 초롱이가 혼자 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일부터 인공포육을 거쳐 스스로 먹이를 먹을 수 있게 훈련시키는 장면 등에선 동물을 향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화된 동물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평생 동물사 안에서만 살다가 결국 관절 퇴화와 디스크로 대수술을 받는 박람이 또한 그렇다. “멸종 위기 동물의 종족 보존을 위해 동물원의 역할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동물들 입장에서는 동물원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는 한 수의사의 말에서 동물원의 양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동물을 향한 비인간적인 행위가 보도될 때마다 동물원 존폐 논란은 더욱 거세진다. 그러나 단순히 동물원을 없앤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동물원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청주동물원의 사육사와 수의사들은 “동물원은 동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그들은 ‘직지’에게 이전보다 넓은 공간을 선물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의 동물원 대부분은 동물의 활동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졌으며, 이를 감당해야 하는 건 온전히 동물들의 몫이다. 관람객은 잠시 머물다 가버리지만 동물들에겐 생의 전부인 곳. 영화는 동물원이 존재하는 한, 이곳에서 사는 생명체들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동물사 안으로 던진 쓰레기를 먹거나 놀림감이 되지 않는 날부터 진정한 ‘공존’이 시작될 것이라고.

영화 말미에서 창살 너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동물들의 눈빛은 가슴을 파고든다. “동물원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김정호 수의사의 말이 실현되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9월 5일 개봉.

CINEMA TALK

지난 20일에 있었던 <동물, 원> 언론배급시사회에서는 영화 상영 직후 왕민철 감독과 김정호 수의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왕민철 감독(맨 오른쪽), 김정호 수의사(가운데)

왜 동물원을 찍게 됐나?

왕민호(이하 왕) : 미디어에서 동물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느꼈다. 동물들을 인격화해서 미화하거나, 비참한 환경만을 강조하는.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가능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주동물원을 선택한 이유는 평소 청주를 자주 다닐 일이 있었는데, 근처 청주동물원이 이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촬영을 시작했다.

‘동물, 원’이라고 제목에 쉼표를 넣은 이유는?

: 동물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고, 동물원에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더불어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두 가지 면을 다 드러내면서도 좀 더 낯설게 느끼게 하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됐다.

동물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수의사나 사육사들의 고민과 노력 등이 잘 드러나 있다

: 처음에는 동물원에 대한 반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관계자들과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의 부정적인 생각이 무지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다. 환경이 열악한 건 사실이나, 그 안에서 사육사와 수의사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 일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

김정호(이하 김) : 사육사들이나 수의사들 모두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돌본다는 데 대한 자긍심이 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원 뒤편의 현장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동물단체들의 동물원 폐지론은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 작년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사건도 그렇고, 동물원과 관련된 안 좋은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동물을 가둬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야생에서 잘 살다가 잡혀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윗대부터 동물원에서 태어난 경우도 많다. 풀어준다고 해도 이 땅에서는 살 곳이 없다. 촬영 당시 수의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해외에서 멸종 위기종을 불법으로 들여와서 파는 업자들이 있다고 한다. 환경부에서 단속해서 업자들을 잡으면 동물들은 동물원에 위탁을 맡길 수밖에 실정이라고 한다. 동물원이 단순히 관람을 위해서 동물을 가둬놓고 키운다는 면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는 동물원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 매일 동물들과 눈을 마주치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터넷 댓글처럼 자연으로 풀어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동물들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독수리처럼 적응 훈련을 거쳐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물론 있다. 요즘 웅담 채취용 사육곰 문제가 대두되는데, 청주동물원도 환경단체를 통해 사육곰을 데려와 보호할 예정이다. 동물원은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을 위한 보호구역(Sanctuary)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주동물원은 서울랜드, 에버랜드와 더불어 서식지외보전기관이다. 서식지가 좋아지면 이런 보전기관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먼 미래에는 동물들이 서식지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동물원도 자연스레 없어지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 동물원에는 북극곰 같은 외국 동물들이 많은데, 환경도 맞지 않는 곳에서 살기에 동물들도 힘들고 동물원에서도 관리하는 데 큰 비용이 든다. 우리나라도 미국 애리조나 소노라 박물관처럼 ‘토종 동물원’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토종 동물들이 다쳤을 때 보호해주고 증식이 되면 서식지로 보내주는. 자연과 동물원이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박람이를 수술할 때 사육사와 수의사 간에 의견이 다른 게 보였다. 박람이 나이가 18살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사육 호랑이 수명은 20년이다) 수명대로 살게 하는 것과 치료해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은 없었나?

: 당시에 박람이는 마취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술을 결정하게 됐다. 확진을 해서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호랑이’라는 동물이 좁은 면적에서 살 수 없고, 더 넓은 공간에서 돌아다녀서 허리근육을 강화해야 디스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동물원 측에 설득하고 싶었다. 박람이를 계기로 다른 호랑이에게는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저도 촬영하면서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덧붙이자면 동물원에서 감정적인 부분을 사육사가 담당한다면 이성적인 부분은 수의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 촬영 단계에서는 가능한 한 많이 찍고, 편집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지, 혹은 안 좋은 면만 부각되는 건 아닌지. 편집감독과 끊임없이 논의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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