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이 닳아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낡은 신발을 신고 다녔지만, 그는 그런 신발도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해 질 무렵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무거운 그림 도구를 메고 한참을 걷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마지막 2년을 담은 작품이다. 1888년, 고흐는 프랑스 파리에서 남부의 작은 마을인 아를로 옮겨 「해바라기」, 「자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걸작을 남겼다. 그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음에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투박한 질감이 인상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내가 보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고흐의 이 고백처럼 영화는 고흐의 시선을 따라간다. 1인칭 시점을 강조하고자 쓰인 핸드헬드 기법(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찍는 기법)은 고흐가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해 들판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걸어가는 중에 갈색이었던 풀은 서서히 초록색으로 바뀌며 고흐가 바라본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나타낸다. 고흐는 자신이 그린 모든 것이 캔버스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믿었으며, 상상이 아닌 자신이 본 것만을 그리려고 애썼다.

영화는 고흐가 자신의 귀 일부를 자르는 모습이나 고갱과의 불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모습 등 자극적인 장면 대신 그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집중한다. 갈대를 비스듬히 잘라 잉크를 묻혀 스케치를 하고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산비탈을 오르며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흙을 자신의 얼굴에 뿌리는 행위는 그가 그림에 쏟은 애정을 짐작하게 하는 동시에, ‘화가’ 고흐의 삶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 영화가 다른 전기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가이자 감독인 줄리언 슈나벨은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고흐의 삶을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했다.

고흐는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동생 테오 말고는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한때 고갱과 우정을 쌓았으나 그림에 대한 견해 차이로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했다. 계속된 정신질환으로 그는 결국 아를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영화는 고흐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 역시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 <그린 파파야 향기>,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잘 알려진 촬영 감독 브누아 들롬은 심도 분리 디옵터를 렌즈에 사용해 아랫부분은 뿌옇고 윗부분은 선명한 장면을 연출했다. 영화 후반부 몇몇 장면에 쓰인 이 효과는 고흐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을 때 바라본 세상이 과연 어땠을지 짐작하게 한다.

고흐 역의 윌렘 대포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연기 같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고흐를 이해하고자 슈나벨 감독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그림도 직접 그려 생생함을 더한다.

윌렘 대포 뿐만 아니라 고갱 역의 오스카 아이삭, 테오 역의 루퍼트 프렌드 또한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정신병원으로 찾아와 고흐와 면담을 하는 천주교 신부 역의 매즈 미켈슨은 단 한번 등장만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그가 의구심과 불신으로 고흐에게 악의에 찬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당시 고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대중의 심리를 대변한다.

고흐는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화가 중 하나이며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다. 영화는 그의 쓸쓸했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12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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