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누군가의 앞에 우연히 나타났으며, 누군가는 그것을 치밀하게 계획해 가지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거액이 담긴 돈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달려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범죄영화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중만(배성우)은 호텔 사우나에서 야간 알바를 하며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지만 딸의 학비조차 댈 수 없다. 태영(정우성)은 도망간 애인 연희(전도연)의 빚을 대신 갚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업소 사장 연희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미란(신현빈)에게 접근한다. 미란은 폭력 남편에게서 벗어나려고 손님으로 만난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를 이용한다.

영화는 역순행적 구성을 택해 중만이 사우나 라커에서 돈가방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중반 이후 돈가방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지를 밝힌다. 빈틈없는 플롯 안에 8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정교하게 엮어 흥미를 더한다. 만듦새만큼은 여느 범죄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임에도 적재적소에 유머를 배치하여 <오션스 일레븐> 같은 케이퍼 무비의 경쾌함까지 갖췄다.

그러면서도 사회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았다. “점점 황폐해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웅크리고 있는 병폐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용훈 감독의 말처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돈가방 때문에 인물들은 살인도 불사한다.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건 바로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다. 한국 영화에서 눈요깃거리로 소비되고야 마는 ‘업소 여사장’ 캐릭터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그려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아 더 놀랍다. 연희는 돈에 대한 욕심도 크지만, 신분 세탁을 하려는 의지가 더 강한 인물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상적이나, 연희가 왜 그렇게까지 잔혹해졌는지 설명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람 잘못 만나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태영은 등장인물 중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정우성의 설익은 연기 때문에 절박함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공감할만한 요소는 중만에게 있다. 거액을 발견하고도 선뜻 갖지 못하는 소심함이나, 거짓말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은 배성우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빛을 발한다.

갈등을 일으키는 매개체가 돈가방이라면 갈등을 증폭시키는 건 배반이다. 연인 또는 갑을 관계에서 일어나는 배신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각박한 현대사회와도 일맥상통한다.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 온 등장인물들이 짐승으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같은 상황에서 과연 자신은 자유로울 수 있을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2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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