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주위의 기대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사람들은 애써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파라다이스 힐스>는 낙원으로 둔갑한 재활시설에 갇힌 여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우마(엠마 로버츠)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으로 옮겨져 세뇌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녀는 여기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이들을 만난다.

시설의 관리자인 공작부인(밀라 요보비치)은 의뢰인들에게 거액을 받고 그들이 정해준 기준에 맞춰 입소한 여성들의 외모부터 생각까지 바꿔놓으려 한다. 우마는 다른 여인들과 힘을 합쳐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그 와중에 이곳에 사악한 비밀이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앨리스 웨딩턴 감독은 이번이 첫 번째 장편영화임에도 발군의 연출력을 선보인다. 언뜻 같은 소재의 영화 <더 큐어>나 <셔터 아일랜드>를 연상시키지만, 여성 간의 연대를 부각시키며 주인공의 자아 찾기로 연결해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 없이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점 또한 미덕이다.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다운 볼거리 역시 놓치지 않았다. 영화의 배경인 재활시설은 각종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궁전과도 같다.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화려한 의상, 독특한 소품 등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더해 출연진의 빼어난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우마 역의 엠마 로버츠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쌓은 연기 내공을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며, 국내에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로 친숙한 밀라 요보비치 또한 제 옷을 입은 듯 캐릭터를 완전히 소화했다. 극 중 우마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아마르나 역의 에이사 곤살레스는 단연 돋보인다.

헐리우드는 다수의 작품에서 동양인 캐릭터를 기이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인종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작품도 <페어웰>로 아시아 최초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아콰피나를 같은 방식으로 소비한 점이 유일한 옥에 티다.

우마와 여인들은 이곳의 비밀을 알게 된 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닫는다. 주위에 피어 있는 꽃들이 모양은 달라도 모두 아름답듯, 영화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판타지 장르를 표방했으나, 한 사람이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성인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들려주어 긴 여운을 남긴다.

3월 19일 개봉.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