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류 대재앙을 다룬 작품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한국형 좀비영화로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얻었던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좀비로 인해 멸망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반도>를 내놓았다.

영화는 <부산행>의 엔딩에서부터 4년 후를 다루었다는 점 말고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만 <부산행>의 시점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석우(공유)가 부산으로 가고 있을 무렵, 정석(강동원)은 누나의 가족과 함께 구조선에 올라탄 것이다. 구조선에 예상치 못한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정석은 누나와 조카를 잃고 매형 철민(김도윤)과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4년 후 정석과 철민은 반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홍콩에서 온갖 무시를 당하던 중, 거액이 든 트럭만 빼내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신이 버린 땅’ 반도로 들어간다.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완전히 폐허가 돼버린 거대한 도심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만 10개월을 쏟은 덕분에 도심 연출만큼은 재앙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액션 시퀀스 또한 화려하다. 자동차 추격씬은 물론이고 좀비와의 사투 역시 다채로워졌다. 등장인물이 좀비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긴장감을 끌어올렸던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빛과 소리에 민감한 좀비를 역이용해 주인공이 위기를 돌파하며 쾌감을 선사한다. 반도에서 탈출을 꿈꾸다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가 포로와 좀비를 한 공간에 풀어놓고 게임을 벌이는 장면은 좀비만도 못한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미 국내 관객 다수는 좀비가 주는 공포 자체보다는 등장인물의 갈등 구조와 서사의 완성도에 더 열광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는 그간 좀비물에서 흔히 봐왔던 플롯의 나열과 작위적인 설정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카체이싱 장면 역시 한국영화의 성취라 할 만하지만 <매드맥스>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탓에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산행>도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한국사회 현실을 반영한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강약조절에 성공하며 인간이 재앙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에 비해 <반도>는 볼거리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과 악의 충돌도 캐릭터 간의 얼개가 느슨하고 설명이 부족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후반부도 몰입을 방해한다. 밤 장면이 대부분이라 관객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야간장면을 낮에 촬영하는 데이 포 나이트(Day for night) 기법을 활용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밝게 느껴져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진다.

주인공인 강동원, 이정현 배우는 서바이벌 게임 캐릭터 같은 연기를 보여 주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악의 축인 631부대 황 중사와 서 대위 역의 김민재, 구교환 배우는 야만적으로 돌변한 군인이라기보다는 조폭에 가까운 연기로 몇몇 장면에서는 실소를 자아낸다.

성인 연기자들 사이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낸 준이 역의 이레 배우는 영화의 가장 큰 성과라 할 만하다. <소원>을 시작으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오빠 생각>, <7년의 밤> 등에서 호평받았던 연기력에 여전사 같은 카리스마가 더해졌다. 준이가 운전대를 잡고 좀비 떼를 들이받는 몇몇 장면은 그녀의 표정 연기 덕에 빛을 발한다. 충무로의 미래를 이끌어갈 배우의 ‘발견’이다.

7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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