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 남경태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판일: 2014년 7월

2014년 12월 23일 향년 53세로 말 돌연 작고하신 고 남경태 씨의 저서 <종횡무진 역사>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7년(2007년~2014년) 동안 MBC 라디오에서 '타박타박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 여러 분야에서 35종 39권의 저서와 99종 106권의 번역서를 남겼습니다. 특히 <종횡무진> 시리즈는 마지막까지 애착을 보이며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도 대담자로 참가했는데, 중간 지병으로 인해 중도 하차하게 되어 애청자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서양 역사는 물론 철학과 음악 문학과 예술사까지 능통한 해박한 지식에 유머러스한 입담, 특유의 편안한 구어체 글은 그를 사랑하는 팬이 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역사 책이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키며, 역사가의 관점을 살짝 얹는 방식이라면, 이 책은 역사가의 사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작가의 취향대로 사건을 선택하고 서로 연관 지으며 나아갑니다.

국경이나 특정 지역을 개의치 않고 종횡무진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서양사·동양사·한국사를 동시에 논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저자라고 장난스레 자랑했던 작가의 자랑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지은이의 향기가 나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고, 좋은 텍스트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지은이의 향기가 진하다.'라고 말했던 작가의 지론처럼, 역사적 사건에 뒤이어 오는 작가의 해설과 평가는 단호하고, 때로는 과감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역사적 공동 운명체인 세계 속에서, 동서양은 각각 어떤 역사를 겪고 발전해왔으며 결국엔 만났는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인류 문명의 발전 속에서 작동했던 원칙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교훈 삼아 현재 지구 상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임을 고려한다면, 작가의 적극적인 평가와 견해는 어쩌면 역사가로서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서양 문명은 승리한 문명이며 승자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십분 인정합니다. 역사적으로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에 뒤지기 시작한 시기는 짧게 보면 15세기 무렵, 길게 보면 10세기 무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세기 서양이 세계 발견과 정복에 나서기 시작한 때가 곧 서양이 동양 문명을 추월하기 시작한 때로 보고, 과연 무엇이 서양을 세계 무대로 진출하게 했는가에 주목합니다. 10~15세기 두 문명은 각자 고유한 틀을 완성합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송 제국에 이르러 동양식 제국, 약 1000년 전부터 시작된 한제국의 이상인 유학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동양식 제국의 정점이었던 송이 중국의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무력한 체제였다는 사실이 동양 문명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조짐이라 설명합니다. 같은 시기에 서양에서는 세속의 영역에서는 분립과 각개약진으로 향하고, 신성의 영역에서는 체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통합성을 담당하는 방대한 분업 체제가 완성됩니다.

중국 문명은 발생할 때부터 중원이라는 지리적 중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중심이 이후의 시대에도 내내 중심의 역할과 기능을 한 반면, 서양은 애초부터 장기적인 중심이 없었던 탓에 문명의 발생지와 발달지가 서로 달랐고, 문명이 발생한 이후 서쪽으로 중심이 계속 이동하였습니다.

15세기 동양 문명은 문명권의 크기, 인구, 경제력, 군사력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세계 최첨단 수준이었으며 그것은 중앙집권의 힘이었습니다. 중앙집권 체제에서는 지배층이 국력을 인위적으로 집중할 수 있으므로 국가 주도하에 사회 발전을 이루기가 용이합니다. 그러나 사회 발전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중앙집권의 힘은 쇠락하고, 대체할 사회 발전의 동력을 찾지 못하는 한계점에 다다릅니다.

통일보다 분산의 흐름을 따른 서양 문명은 동양 문명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었습니다. 느슨하게나마 통일을 이루었던 로마 제국 이래로 서양사는 한 번도 통일 제국이 지배하지 못했고, 늘 분주하다 싶을 만큼 분권적이었습니다. 분열된 서양사회는 약한 응집력 덕에 7세기 이슬람의 침략, 12세기 몽골의 침략 등 외부 문명권의 공략에 늘 시달렸습니다.

제각각이었던 서양 문명은 그리스도교와 만나면서 저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중세에 문명의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으로 작용했던 기독교는, 정교분리와 종파의 분열, 독자적 발전의 길을 걸으며 서양 문명이 세계 문명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향후 그리스도교의 느슨한 통합력은 서양 문명에 국경을 넘어선 최소한의 응집력을 제공합니다.

결국 동양 문명이 '통일 지향적'이고 서양 문명이 '분산 지향적'이었다는 점이 두 문명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1492년)에 뒤따라 온 부(금과 은, 농작물)는 서양 문명이 동양을 앞지르고, 세계 문명을 주도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정치가 경제를 좌우한 시기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경제의 흐름에 의해 정치 형태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양사에 등장하는 정치 형태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 현상을 따라잡기 위해 탈 중심적이고 분권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오늘날에도 그 본질은 같다고 설명합니다.

12~13기 약한 정치권력과 무역 및 상업의 발달로 서양에 등장한 자치 도시는 전직 농노를 빠르게 흡수하며 발전합니다. 가혹한 영주의 수탈과 억압을 피해 도시에 모여든 이들은 후에 부르지아지로 성장하여 시민계급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도시의 발달은 새로운 정치를 탄생시킵니다. 시민들은 농민이 아니므로 토지나 농사 시설을 빌미로 착취당할 여지가 적었으며,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시정이 운영되므로 아무리 독재적인 권력자라 해도 시민의회나 시민법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납세의 의무와 함께 권리도 누렸는데 가장 중요한 권리는 바로 법과 정치권력 앞에서 평등을 보장받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인위적인 정치로(특히 제도) 경제를 묶어온 동양 역사에서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 늘 정치적인 세력과 특정 집단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의 역사에서는 늘 실제 권력자(사대부 세력)와 상징 권력자(왕)가 나뉘어 있었기에 모든 정치 행위와 사회현상에서 '배후'를 가정하는 후각이 발달했습니다. 물론 경제는 정치권이 쏟아내는 제약에 갇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 했습니다.

저자의 사견이 듬뿍 곁들어진 자유분방한 해석은 마치 언변 좋은 선배가 들려주는 '재미있고 그럴듯한 인류의 발전사'를 듣는 느낌을 줍니다. 독자는 종횡무진 세계사를 훑어가며 서양과 동양 문화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즐거움을 만나기도 하고, 뭔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합니다. 근소한 기술적 우위가 가져다준 화력의 우위, 지리적 여건으로 갖게 되는 각종 감염병에 대한 학습, 식민지를 필요로 했던 산업혁명의 여파들을 우연의 산물로 볼 수는 없을까? 다양한 질문이 떠오르죠.

시험 점수를 위해 세세한 사실에 집중하여 역사를 공부에 머문다면 그 만만치 않은 분량에 치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볼 기회를 놓치게 되기 십상입니다. 세계사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과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건들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중요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현재를 파악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고자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국사'라는 좁은 영토에 국한된 아전인수격 해석을 넘어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근거 없는 선민의식을 부끄러워하고, 다문화 시대에 걸맞게 다른 민족들을 존중하는 더 나은 세계 시민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저자의 인터뷰 글을 옮겨봅니다.

“과거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과정이 바로 혁명인데, 우리 역사에서는 혁명이 없었기 때문에 참된 역사적 교훈을 얻은 적이 없다. 혁명으로 모순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원죄’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올바른 역사의 비판이 행해질 때 그 걸림돌의 높이는 낮아질 것이며, 마침내 제거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나준석/안산 한마음치과 원장
저작권자 © 덴티스트 - DENT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