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렇게 산다] 9) 류호성 웅 치과의원 원장

진료는 프로답게, 여가 생활은 그 누구보다 멋지고 신나게!
낮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치과의사로, 퇴근 후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나만의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바로 여기 있다. 색다른 취미로 인생을 맛깔나게 살고 있는 치과의사들을 만났다.

류호성 웅 치과의원 원장

문학을 사랑하던 문과학생이 25세 늦깎이 치과대학 신입생이 되기까지. 또 무모하지만 호기롭게 떠난 일본 유학길과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단장으로서 20여 년 동안 걸어온 또 다른 삶. “플루트 연주가 생활의 일부가 되며, 취미 이상이 됐다”는 치과의사, 류호성 원장(웅 치과의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삶의 일부가 된 플루트와 음악

류호성 원장의 치과의사 입성기는 조금 특별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이상주의자’였다는 류 원장. 그는 학창시절에 웬만한 명작소설은 섭렵할 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소년이자, 클래식음악을 즐겨듣는 문과학생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뒤 25세에 체력장, 예비고사를 치르고 81년도에 치과대학에 입학, 31세에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 후 개원한 뒤엔 잘 나가던 병원을 접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입학부터 유학까지, 무모한 도전이었네요. 당시 국비유학생이 아니면 엄청난 유학비용이 들기 때문에 유학은 집안이 부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선택이었어요. 유학을 결행하려고 일요일도 없이 육체를 혹사해가며 진료를 봤고, 유학 경비를 모았다고 판단했을 때 번창일로에 있던 병원을 정리하고 가족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죠.”

“제 결정을 후회할 만큼 현실은 더욱 어려웠어요.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니, 후원단체의 생활보조금 지원, 장학금 등 구원의 손길들이 생겼어요. 노력 끝에 외국인 유학생으로서는 최단기인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수비자를 받아 대학원생의 실험과 논문지도를 맡은 문부교관 조수를 지냈죠. 이후 귀국해 다시금 개원을 했는데,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새롭게 시작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나 봐요. 그때 플루트라는 악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됐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한동안 음주에 빠져 지냈다는 류호성 원장. 하지만 과음이 이어지다보니 정서적으로 피곤함이 더해졌고, 취미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산행, 사진 등을 시작했다. 그 중에 플루트 연주는, 플루트 학원 홈페이지에 우연히 접속하면서 시작한 취미다. 악기 하나 다루지 못했던 그가 플루트를 접한 건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세교요양병원에서 펼쳐진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재능기부 연주회 모습.

“어려서부터 클래식음악을 듣는 건 좋아했고, 관심은 있었죠. 하지만 음악적인 재능이 부족해서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없었어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개원을 준비하면서 치과 홈페이지 개설을 위해 참고용으로 여러 홈페이지를 검색했는데, 우연히 플루트 학원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됐어요.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여서 바로 학원에 전화해 ‘40대인데 지금 플루트를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귀국하자마자 플루트 학원에 등록해 연주를 시작한 류 원장. 얼마 지나지 않아 플루트 지도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창단 계획을 전했고, 그에게 단장 직을 맡아달라 부탁했다. 그렇게 96년도에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단장은 연주보다는 행정적인 일을 도맡다보니 큰 부담 없이 수락했고, 네 번 정도 연습한 뒤에 무대에 처음 섰어요. 전체 분위기를 느끼면서 멜로디를 쫓아가야하는데,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감각도 부족하다보니 박자를 수학적으로 세면서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처음엔 많이 고생했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꿈의 무대에 서다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연주회 모습.

오케스트라 단장으로서 열과 성을 다해 단원들을 이끌다보니 플루트 연주는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됐다. “플루트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것을 덤으로 얻었다”는 류 원장. 플루트 연주에 대한 열정만큼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도 상당했다.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단원은 40여 명으로, 의사, 교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음악전공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 그리고 진지함은 프로 못지않다.

“초창기 멤버 10여 명은 지금까지도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별도의 홍보 없이 자연스레 실력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나서 단원들이 많이 모집됐죠. 서로 질투하거나 패를 가르거나, 혹은 지휘자의 태만함 등 여러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는 오케스트라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 단체는 합도 좋고 분위기도 상당히 화기애애해요. 현재 가천대 음대 교수님이 지휘자인데, 실력도 출중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단원들을 조화롭게 지휘하는 능력이 있어요. 단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에요.”

불협화음 없이 즐겁게 연습한 덕분일까. 류호성 원장이 이끄는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는, ‘생활예술 오케스트라 축제’의 주역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는 영광도 누렸다. 서울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전국에 산재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체의 신청을 받아 경선 후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는 2015, 2016, 2017년 삼년 연속으로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아무나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에요. 160여 개 팀 중 일차로 50개 팀을 추리고, 최종적으로 20여 개의 단체가 선정되죠. 큰 무대에 삼년 동안 설 수 있어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은퇴 후엔 음악·문학기행 꿈 꿔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는 오는 28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 번째 정기연주회를 연다. 류호성 원장을 비롯한 단원들은, 10일도 채 남지 않은 연주회 준비에 한창이다.

“정기 연주회를 앞두면 완벽한 공연을 위해 평소보다 연습 시간을 늘려요. 원래는 다들 본업이 있다 보니 자주 모이긴 쉽지 않고,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두 시간 정도씩 연주해요. 이후에는 다음 모임까지 일주일동안 각자 연습해온 뒤 합을 맞춰요. 강제가 아님에도 정기 연습에 결석하는 단원은 거의 없어요. 음악을 정말 즐기는 사람들이에요.”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연습 모습.

플루트 연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다는 그. 어느덧 삶의 일부로 녹아든 플루트와 음악에 대해 깊게 알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고, 꾸준히 공부했다. <나의 발자취에 남아 있는 멜로디> <아름다운 선율을 가슴에 담고> <아름다운 플루트 선율을 그리다> 등 류 원장의 음악이야기를 담아낸 저서도 다수 집필했다.

플루트와 음악을 사랑하는 로맨틱한 치과의사 류호성 원장. 20여 년 넘게 음악을 가까이 하다 보니, 현업에서 물러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음악·문학기행이에요. 어려서부터 워낙 문학에 관심이 많다보니 여러 작가들의 생애가 담긴 특별한 장소나, 혹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는 문학기행을 하고 싶어요. 또 유럽의 큰 무대를 방문하고, 유명 음악가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음악기행도 꼭 떠나고 싶습니다.”

제10회 밀레니엄 플루트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안내
일시 : 4월 28일(토) 오후 7시30분
장소 :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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