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렇게 산다] 10) 김도훈 서울N 치과의원 원장

진료는 프로답게, 여가 생활은 그 누구보다 멋지고 신나게!
낮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치과의사로, 퇴근 후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나만의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바로 여기 있다. 색다른 취미로 인생을 맛깔나게 살고 있는 치과의사들을 만났다.

이태리의 유명한 와이너리 비욘디 산티(Biondi Santi)를 방문했을 때,
Franco Biondi Santi씨<오른쪽>에게 와인에 사인을 받고 있는 김도훈 원장<왼쪽>.

“저보다 와인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알고, 즐기는 원장님도 많은데 부끄럽습니다. 아직도 배울 게 많아요.”
인터뷰 요청에 김도훈 원장(서울N 치과의원)은 멋쩍은 듯 웃었지만, 와인에 대한 그의 애정과 지식은 동료들에게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김 원장이 소속된 성남분회, 그리고 학회에서 와인 관련 세미나 진행을 부탁받고, 명절을 앞두곤 지인들의 와인 추천 요청이 이어진다. 19년째 와인의 깊은 풍미에 푹 빠져 있는 김도훈 원장을 만났다.

우연히 맛본 와인…‘아마존’에서 와인전문서적 구입해 독학

대형마트에 와인 판매코너가 자리 잡고, 와인 전문 판매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와인을 손쉽게 맛볼 수 있는 환경이 됐지만, 김도훈 원장이 와인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2000년도만 해도 와인은 국내에서 생소한 주류였다.

“원래 위스키나 소주, 맥주 등 술 자체를 즐겼는데, 와인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우연히 2000년도에 선배와 이태리 와인 시음회에 가게 됐는데, 당시 마셨던 와인이 고급은 아니었지만 그 맛에 푹 빠지게 됐어요.”

와인의 매력에 취한 김 원장은, 그날 이후 여러 와인을 접하면서 맛을 차츰 알아갔고 와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2003년 군의관 시절, 그는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서 와인전문원서를 구입해 독학을 시작했다.

“당시엔 인터넷 환경이 낙후됐기에 와인 판매가격을 가늠하기 힘들뿐 아니라 와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조차 없었죠. 와인서적의 번역본도 없었고요. 와인에 대한 흥미와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컸기에 원서로 된 전문서적을 구입해 차근차근 공부했어요.”

김도훈 원장은 비욘디 산티(Biondi Santi)를 방문해 와이너리에서 소장하고 있던 1955년, 1961년, 1971년 산 와인을 맛봤다.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와인 동호회가 하나 둘씩 생겼고, 김 원장도 레지던트 시절, 와인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동호회 사람들과 와인을 시음하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배우는 것이 많았다. 또 와인을 매개체로 치과의사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건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와인은 단기간에 지식이 쌓이기 어려운 영역이에요. 맛이나 향을 느끼는 건 주관적이기 때문에 맛을 객관화 하려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에요. 와인을 19년째 마시고 있지만, 저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와인을 즐긴 분들과 만나면 아직도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서로 이야기하며 더 발전해 가는 것 같아요.”

눈·코·입이 만족되는 와인의 매력에 푹~

와인이 보편화 된 지금이 와인을 가볍게 즐기기 좋은 시기라는 김도훈 원장. 그는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격대의 와인도 결코 나쁘지 않다”면서 와인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와인은 눈, 코, 입을 모두 만족시켜요. 식사를 하며 와인을 가볍게 곁들이면 깔끔하고 기분 좋게 살짝 취하는 점이 좋아요.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와인이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다 보니 머리가 아프거나 숙취가 생길 만큼 과음하지 않게 돼요.”

“주변에서 와인을 마시면 두통이 있다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 과실주랑 곡물주를 섞어 마시면 굉장히 안 좋아요. 중저가 와인 중 첨가물이 들어가면 뒤 끝이 안 좋은 경우도 있어요. 또 와인의 도수가 결코 낮지 않은데, 와인 잔에 많은 양을 빠르게 마시게 되기도 하죠. 이런 점만 주의하면, 맛있는 음식과 곁들여서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어요. 아내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가끔씩 모스카토처럼 가벼운 와인을 한두 잔씩 하기도 해요.”

김도훈 원장의 와인 사랑이 남다르고, 그만큼 전문성도 뒷받침되다 보니 주변에서 와인 관련 사업을 권하기도 했지만, 그는 “마니아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업을 하게 되면 제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하게 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클 것”이라면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서 즐기고 싶다고 했다.

와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또 다른 즐거움

외국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아직 병입하지 않은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시음하기도 했다.

와인의 향을 즐기고, 다양한 와인을 접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김도훈 원장. 국내 와인시장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다보니, 빈티지한 와인을 구하기 위한 노력도 멈출 수 없다고..

“국내에서는 잘 보관된 빈티지 와인을 구하기 어려워요. 다만 최근 모 대기업에서 와인 마니아층을 위한 유니크한 빈티지 와인을 조금씩 수입하고 있어서 와인을 오래 즐겨온 입장에서 고맙고 기쁘죠. 저를 비롯해서 주변에 와인을 즐기는 분들은 빈티지 와인을 구하기 위해 일본, 홍콩 등으로 여행을 가곤해요. 일본도 와인의 역사가 오래됐기에 일본에서 직접 제조된 와인을 맛볼 수 있고, 숙성된 와인도 많이 접할 수 있어요.”

프랑스, 이태리, 남아공, 스페인, 미국 등 현지의 좋은 와인을 맛보기 위한 와이너리 투어 역시 그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결혼하기 전엔 와이너리 투어를 많이 갔어요. 와인 수입사 대표님과 친분이 있어서 지금도 같이 종종 투어를 가곤해요. 와인 생산지는 대부분 포도농사를 짓는 시골이여서 편의성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번화가보다 조용한 동네에서 쉬고 오면 제대로 힐링이 돼요. 현지에서 질 높은 와인도 맛볼 수 있으니 제겐 최고의 여행이죠.”

외국 와이너리를 방문해 해당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와인을 시음했던 사진.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김 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와인은 주관적인 부분도 크고, 수입사는 어디인지, 생산년도는 언제인지, 생산자는 누구인지 세세하게 체크해야할 부분이 많고, 또 와인의 재고까지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추천은 항상 어렵다”고 했다.

이에 그는 특정 와인을 한정해 추천하기보다, 어느 국가의 어느 지역, 그리고 일정 가격대의 와인을 추천하곤 한다. 친한 지인들에겐 미리 사둔 품질 좋은 와인을 선물하기도 한다고..‘음식이 술을 결정한다’고 믿는 김도훈 원장이 고민 끝에 음식 별로 무난하게 즐기기 좋은 와인을 추천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구분 없이 스테이크나 고기를 먹을 땐 대형 마트나 홀세일 마트에서 할인해 판매하는 2~3만원 정도의 호주 Shiraz, 그리고 아르헨티나 Malbec으로 만든 와인을 추천해요. Shiraz와 Malbec은 포도 품종이에요. 회나 초밥에 곁들이기엔 마트에서 할인된 기준으로 2만원 초반대의 스페인산 Cava를 추천해요. Cava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인데 가성비가 좋아요. 피자나 파스타에는 역시 마트 기준 세일 가격 2~3만원 정도의 Sangiovese포도로 만든 와인이면 충분히 좋을 것 같아요.”

“음식이 술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스럽게 모든 음식에 와인을 맞추고 고집하려하지 않아요. 한식은 일반적으로 향이 강해서 와인과 매치하기 힘든데, 이럴 땐 한국 술을 마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중국 음식에는 중국 술, 일본 음식에는 일본 술이 맛있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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